'경제학'하면 수식과 그래프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진화경제학》은 제목에서부터 우리를 매우 낯설게 한다. '진화'라는 생물학 용어를 가지고.

증기기관으로 상징되는 근대 산업문명의 등장은 고전 물리학의 빛나는 적용이었다. 이는 경제학에서도 고전 물리학에 기반한 '신고전파 이론'의 번영을 가져왔다. 하지만 물리학이 고전 물리학이나 고전 역학만의 세계가 아니듯이 사회경제 현상도 신고전파 경제이론만으로는 만족스럽게 설명되지 못한다.

그간 신고전파 경제이론은 설명요인을 확대하며 분석 능력을 높이고자 했으나 '설명요인과 피설명요인 간''각종 설명요인 간' 상호 연계는 여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테면 '내생적 성장모형'은 기술혁신-교육 등을 추가하며 경제성장이론을 설명하려 하지만 기술혁신이나 교육 투자가 어떻게 성장을 추동하는지는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진화경제학》은 진화론의 틀로 여러 요인들의 상호작용과 그 변화를 설명한다. 한마디로 '경제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으로,단순한 단계로부터 진화 · 발전하며 환경에 맞춰 적응하고 변화해왔다'면서 '진화경제학은 경제학을 진화 · 발전하는 복잡한 적응시스템으로 보고,생존을 위해 무리생활을 하는 영장류의 길을 택했던 인간의 특성과 관련짓는 경제학 연구의 한 갈래'라고 설명한다.

이 책의 문제 제기는 △경제는 어떻게 수렵채집경제에서 소비교역으로 진화했는가 △수렵채집경제에 맞도록 진화 · 적응한 인간의 두뇌가 어떻게 소비교역 경제시스템 안에서도 기능하는가 △어떻게 도덕적인 감정이 진화해서 서로 협력하게 하고 또 공정하고 자유로운 교역을 촉진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와 경제 시스템의 행태,시장과 경제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심리,도덕적 면모 등을 검토하고,이를 통해 인간이 도덕적 감정을 진화 발전시켜왔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진화 현상을 설명하며,전통적 경제학 개념을 진화주의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심리학,뇌과학,행동경제학을 동원해 조명한다. 특히 경제현상 내 협력,도덕적 선택,신뢰가 어떻게 인간의 본성으로 진화된 것인지 살피면서 시장기능에 대한 지지를 역설하고 있다.

또 '현실 경제의 시장실패는 신뢰의 환경이 붕괴되고 도덕적 행동이 발현되지 않은 데서 생긴다'며 이에 대응한 정책은 인간의 최대자유에 최소한의 제한을 가하는 것임을 입증한다. 따라서 교역과 신뢰를 이어줄 수 있는 도덕적 감정이 지속적으로 진화했듯이 이를 더욱 촉진시키기 위해 자유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시장 자본주의를 확산시키고,개인 간 그리고 국가 간 신뢰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정치 · 경제권력의 투명성을 유지하고,어디에서든 누구나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하며,정치적 경제적 국경을 개방해야 한다. '

이 같은 진화경제학적 입장이 '자유주의에 기반한 시장경제'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경제 제도의 진화에 주목하면서 자유주의와는 상당한 거리를 가지는 시각도 있다.

진화경제학에 접목된 진화는 다윈의 이론보다 라마르크의 이론과 더 가깝다. 생물체의 유전 정보가 다윈의 돌연변이와 적자생존으로 설명되는 것에 비해 사회경제에서는 성공 경험이 반복 · 증폭될 수 있으며 학습을 통해 확산되고 발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이론에 가까운 것이다.

유기체의 진화는 변이와 누적적 선택(도태)에 의해 움직이나 사회경제에서는 인간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진화는 '이미 온 결과'를 해석할 때는 유리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결과'를 전망할 때는 불리할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론이 유전공학과 바이오 혁명의 모태가 됐듯이 진화경제학은 수식과 그래프에 의한 도식적인 설명을 넘어 살아있는 유기체로의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경제문제 처방과 정책 개발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통경제학과 생물학,진화이론,심리학,행동경제학,진화경제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박식함이 놀랍다. 그래서 번역의 어려움도 더 컸으리라.많은 이론들을 아우르면서 이해하기 쉽게 우리말로 옮긴 역자의 소감이 개정판에는 포함되길 기대한다.

황규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과학기술인력공동연구센터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