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길에 차오르는 것들/ 겨울의 시큼한 땅을 딛고 생의 중심으로 차오르는 것들 …(중략)// 그 모든 것들의 견딤이 상처로 일어서는 밤/ 강변의 불빛이 제 쓰린 배를 강물에 부비고/ 눈보라 속에 제 얼굴을 묻다 새벽의/ 찬 공기 속에 사라지고 나면/ 밤을 견딘 건물들은 생의 중심으로 차오르는/ 슬픔과 연민 따위에 잔설처럼 시커먼 매연에 엉겨붙는다. '(시 <건물들> 중)

신작 시집 《시간의 동공》(문학과지성사)을 낸 시인 박주택씨(50)는 "고통은 삶을 삶답게 만들고 그 고통 속에서 나온 예술은 불멸의 이름으로 우리들 앞에 선다"고 말한다. 생의 중심으로 차오르는 고통을 직시하는 건 시간을 넘나들며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밝은 눈동자,동공이다.

<강과 나무>에서 그는 '작년처럼 서 있지 않겠다고/ 지르며 지르며/ 아픈 것을 감추는/ 하루'를 살아가는 나무들과 같은 우리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저 서 있는 나무들의/ 현기를 보십시오 왜 흐르거나/ 걷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어디로든지 운명이 주는 밥그릇들을/ 깨끗하게 닦고 싶지 않았겠는지요. '

그래서 '눈에서 둥글게 맺혀/ 감정으로 부풀다 아랫눈썹이 다스림만으로 힘들 때쯤/ 도르르 흘러내리는'(<깊은 곳,깊은 눈> 중)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시인은 '허공에 눈동자를 박겠습니다/ 하여 밤을 노래할 것 아니겠습니까'(<가을 기도문> 중)라고 말한다.

그의 눈동자,동공은 기억을 끌어당기는 창구가 되어 시를 소환한다. '꽃이 지는 밤,꽃이 떨어지며/ 한 올 문장으로 일어서는 밤//…(중략) 나뭇잎 스삭이는 소리에 섞여/ 방문에 어리는 그림자// 칼날을 세우고 있다,꽃이 질 때마다/ 발을 옮겨 방 안을 엿보고 있다// 달이 훤히 벌레의 핏줄까지/ 비추는 겨울밤,문을 찢은 칼날이// 목을 내려치고 있다. '(<추억> 중)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