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가을 네덜란드의 한 중견 식품회사에 젊은 경영자가 새로 임명됐다. 연매출 2억8000만유로에 1100명의 직원을 거느린 회사는 여전히 이익은 내고 있었지만 매출과 수익성 면에서 눈에 띄게 추진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새 경영자가 맨 처음 한 일은 자신이 원하는 일하기 방식을 솔직하게 밝히고,직원들과 회사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직원들의 심금을 울렸다. 직원들 사이에 좌절감을 걷어내기 위한 에너지와 독창력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회사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 경영자가 등장한 전후로 사업도 그대로였고 직원도 그대로였다. 바뀐 것은 단지 리더십뿐이었다. 젊은 새 경영자는 변화의 방아쇠를 제대로 당길 줄 알았던 '인재'였다.

우스갯소리지만,인재경영이라고 하면 '인재를 육성하는 경영'인지 '인재에 의한 기업경영'인지 헷갈린다는 사람들이 있다. 뜻이 아름다운 '인재'가 붙다보니 다 좋은 말이겠지라며 무턱대고 받아들인 탓이다. 유행과 소문만 좇는 구이지학(口耳之學)의 폐해다.

인재경영이 강조되는 것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건 조직을 운영하고 관리하며 조직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시스템 측면을 주장하기도 하지만,그 시스템마저도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인재경영의 원칙》의 출발점 역시 '사람이 기업의 최고 자산'이라는 정신에 서 있다. 유니레버 경영자와 컨설턴트로 함께 일했던 저자들은 기업이 성과를 내려면 회사와 함께 야망을 키우고 조직을 이끌어갈 인재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이런 인재경영 목표를 경영전략 우선순위의 맨꼭대기에 둘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은 인재경영을 위한 체크리스트라고 할 '조직체질진단표'를 축으로 구성돼 있다. 인재를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일하도록 할 것인지에 관한 56개 체크리스트가 9가지 주제별로 제시된다. 예컨대 △인재를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리더의 비전과 사업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한다 △직원의 야망을 파악하고 지지해야 이기는 팀을 만들 수 있다 △성공하는 조직의 분위기를 만들려면 성과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조직풍토 점검을 위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등이다.

30년 동안 경영현장을 지켜본 저자들의 몇 가지 결론은 경청할 만하다. 첫째,유명한 경영자를 모셨다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리더십이 절로 담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어떤 조직에나 두루 통하는 유비쿼터스형(型) 재능은 적어도 기업경영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평판을 업고 화려하게 등장하는 경영인일수록 기껏해야 말단직원도 할 수 있는 비용절감만 외치다 끝날 수 있다고 한다. 둘째,인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조화로운 팀이라는 것이다.

부록에는 옮긴이들이 일하고 있는 삼일PwC컨설팅이 이 체크리스트를 활용해 국내 증권사와 은행 등 4곳을 컨설팅한 사례가 실렸다. 영어판은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경영전략(High Performance Business Strategy)》,2007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