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덕에 없던 길이 열렸다는 얘기가 재미있다. 문경 '토끼비리' 말이다. 토끼비리는 조선시대 큰 길 중 하나였던 영남대로 옛길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구간.평창의 칠족령처럼 동물이 등장하는 사례는 많이 있는데 토끼비리는 고려 태조 왕건의 얘기도 얽혀 있어 특별하다.


Take1 토끼가 알려준 통로

토끼비리는 문경의 영강이 진남교반에 이르러 급하게 휘감아 돌아 나가는 오정산 자락의 벼랑에 남아 있는 옛길이다. 석현성에서 영강까지 1.5㎞ 정도로 짧은 이 길은 진남교반에서 영강을 건너 산허리를 치고 올라가든가 반대로 돌고개마을 쪽 성황당에서 고모산성의 날개성인 석현성 진남문의 왼편 성벽길을 따라가면 된다.

이 벼랑길에 토끼비리란 이름이 붙은 데는 고려 태조 왕건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문경현 산천조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관갑천(串岬遷)은 용연의 동쪽 벼랑이니 일명 토천(兎遷)이라고 한다. 세상에 전하기를 고려 태조가 남쪽으로 쳐내려와 이곳에 이르니 길이 없었는데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갈 수가 있었으므로 토천이라고 불렀다. ' 토끼가 달아난 벼랑의 토끼길이란 뜻인데 이고장 사람들이 사투리로 토끼비리(토끼벼루)라고 부르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석현성 성벽길에서 이어지는 토끼비리는 그냥 그런 좁은 산길 같다. 오른쪽 벼랑 아래로 동강이 흐르는 칠족령 길처럼 토끼비리에서도 영강 물이 나무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인다.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한 구간'으로 시작되는 토끼비리 설명판을 지나면서 사정이 싹 달라진다. 분명 바위를 깎아 만든 길인데 그 폭이 매우 좁아 위험해 보인다. 길이 생긴 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는지 검은 바위의 표면이 반들반들 닳아 미끄러워 보일 정도다. 변화무쌍한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길의 연륜이 느껴진다. 길이 급격히 좁아지며 가파른 지점에는 나무데크를 만들어 놓았는데 썩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발걸음을 돌려 고모산성에 오른다. 삼국시대 초기인 2세기께 신라에서 계립령길(하늘재)을 열던 시기에 북쪽 고구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좀 어수선하다. 전망만큼은 기막히다. 경북8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Take2 새들도 쉬어 넘는 새재 옛길

토끼비리는 성황당이 있는 돌고개마을을 지나 문경새재로 이어진다. 날아다니는 새도 쉬어갈 정도로 험한 고개였다는 새재는 영남대로가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목의 마지막 고개.죽령으로 가면 죽을 쒀 죽죽 미끌어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영남의 선비들이 애용했던 과거길이기도 하다. 요즘 단풍이 한창이어서 온 가족이 걸으며 가을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새재에는 관문이 세 개가 있다. 제1관문은 주흘관.세 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한 관문이라고 한다. 제1관문 넘어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성황당이 있다. 병자호란 때 화의를 주창했던 최명길과 성황신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KBS촬영장은 사극 촬영 중심의 야외세트장으로 초창기 문경새재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데 한몫 단단히 한 일등공신이다. 조령원터 부근의 단풍색이 곱다. 원은 고려ㆍ조선시대의 국영여관으로 역과 역 사이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했다. 교귀정은 경상도 신구관찰사가 관인을 인수인계하던 곳.주변 단풍이 정말 화려하다.

제2관문인 조곡관은 새재에서도 험한 천혜의 요새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충주 탄금대가 아닌 이곳 조곡관이 생긴 자리에 진을 쳤다면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가정도 해본다.

마지막 제3관문을 향해 장원급제길을 따른다. 병약한 아이가 돌담을 나르는 중에 건강을 되찾고 장원급제까지 했다는 전설의 책바위 앞에서 기원하는 이들의 등에 비치는 가을햇살이 따사롭다.

문경=글ㆍ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여행 TIP

서울에서 경부ㆍ중부고속국도~영동고속국도~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국도를 따라 내려가다 문경새재 나들목이나 점촌ㆍ함창 나들목에서 빠진다. 동서울터미널과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점촌행 직행버스가 다닌다. 2시간 걸린다. 서울역에서 경부선 하행열차를 타고 김천역에서 내려 점촌행 열차로 갈아탄다.

약돌돼지고기가 유명하다. 게르마늄이 함유된 약돌가루(거정석)를 첨가한 사료를 먹인 돼지라고 한다. 새재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앞 새재초곡관(054-571-2320)이 좋다. 1인분 150g에 9000원.새재도립공원 주차장 입구에 있는 소문난식당(054-572-2255)의 묵조밥은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다. 묵채가 얹혀진 조밥을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다. 12가지 반찬도 정갈하다.

철로자전거를 즐겨보자.진남역(054-553-8300)과 가은역(054-571-4200)에서 출발한다. 4인 가족이 탈 수 있는 철로자전거 1대 1만원.불정역에 폐객차를 이용한 열차펜션이 있다. 문경종합온천(054-571-2002)과 문경기능성온천(054-572-3333)에서의 온천욕이 좋다. 문경새재도립공원에서 8일까지 문경사과축제가 열린다. 문경시 관광진흥과 (054)550-63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