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승용차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서울의 도심 거리는 아주 시끄럽고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었다. 저마다 빵빵대는 경적소리와 서로 먼저 가려다 뒤엉키는 바람에 모두가 늦게 가는 도로,길 한켠에서 접촉사고의 잘잘못을 가리는 시비는 왜 또 그렇게 많았는지….

선량했던 이웃도 운전대를 잡기만 하면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길거리에 나서는 순간 도로의 그 많은 자동차는 적군으로 변하고,나는 그들을 상대로 성전을 선포하는 엄숙한 착각까지 들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난폭운전을 하는가? 이런 수수께끼가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10여년 전 TV에서 흑백 만화영화 한 편을 보고 깨닫게 됐다. 주인공 구피씨는 예의 바르고 선량한 소시민이지만 운전대만 잡으면 폭력적인 괴물로 변한다. 신호를 무시하고 난폭운전으로 남을 위협하면서도 자신은 훌륭한 운전자라고 자부한다. 차에서 내릴 때면 다시 어깨가 처지고 얌전한 구피씨로 돌아온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월트디즈니가 1950년 제작한 '모토마니아'라는 단편이다.

왜 그럴까? 《트래픽》의 저자는 이처럼 운전자를 미치게 만드는 요인이 매우 복합적이라고 설명한다. 먼저 사람이면 누구나 빠지게 마련인 편파적인 사고 때문인데,내가 걷고 있을 때는 운전자의 단점만 보이다가 운전할 때는 보행자가 나를 위협하고 성가시게 하는 대상으로 보인다는 것.

두 번째는 교통시스템의 어쩔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도로에서 운전자는 서로 상대방의 뒤통수만 쳐다보게 돼 있다. 이런 '난 몰라'식의 자동차 설계로 인해 운전자는 조그만 일에도 언제나 자신은 피해자이며 모든 것은 '저 뻔뻔한 놈' 때문이라고 분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연 마주보고 대화가 가능한 구조라면 서로 조심하고 얼굴 붉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사고는 건너편 도로에서 났는데 이쪽 도로까지 덩달아 막힌다고 화를 내면 누워서 침뱉는 격이 된다. 그것은 자신을 포함해 사고 광경을 구경하려는 차들 때문이다.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기도 하지만,다른 사람이 모두 구경하는 것이라면 자기만 놓칠까봐 꼭 보려는 심리가 따로 있다.

사고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운전자들이 속도를 늦추는데,이때 운전자 한 사람당 10초 정도 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나는 10초 정도 잠깐 구경하는 셈이지만 내 뒤로는 그것이 쌓여 10분 이상 걸리게 되는 것이다.

'한 시간 통근 원칙'이라는 신기한 불문율도 있다. 매일 직장에 가는 데 사람들이 들이는 시간이 뜻밖에도 1.1시간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번잡한 선진국 대도시나 아프리카의 시골 마을이나 이 원칙에는 큰 예외가 없다.

이것은 자동차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 사회에는 일하러 가는 시간은 1시간 정도가 적당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돼 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인간에게는 집에 머물려는 욕구(동굴본능)와 이동하려는 욕구가 있는데,이 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1시간 내외로 체질화된 결과라고 한다.

심리와 과학기술 분야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도로와 자동차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사람들의 괴상한 행동들에 대해 시시콜콜한 지식까지 죄다 풀어놓았다. '트래픽'이라면 짜증부터 나는 세상이지만,저자가 수다 떨기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일 것이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