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투란도트'의 마지막 곡 '파드르 오귀스토(Padre Augusto)'가 끝나자 관객들은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출연진은 여러 차례 커튼콜로 화답했다. 아름다운 가을 밤을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감동으로 적신 공연이었다.

한국경제신문과 솔오페라단이 15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산카를로 국립극장을 초청해 가진 이번 공연은 유럽 최고 오페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무대였다. 산카를로 극장장인 잔니 탄구치가 총예술감독을 맡아 오페라 본고장의 숨결을 느끼게 해줬다.

'투란도트'는 자코모 푸치니의 마지막 작품으로 음악적으로는 중국 풍의 이색적인 선율을 풍요로운 관현악에 접목시킨 것이 특징.이날 지휘를 맡은 마르첼로 모타첼리는 이런 극의 특성을 십분 살렸다. 관악 파트와 현악 파트가 조화를 이뤘고 무대 연기자들과의 앙상블도 돋보였다. 특히 배우들과 합창단이 서로 주고 받는 가창 부분을 받쳐주며 무대를 장악했다.

연출자 안토니오 데 루치아는 배우들의 동선,50여명의 등장인물 무대 배치 등에서 정확하게 계산된 연기를 이끌어냈다. 등장인물들이 사방으로 들락거리도록 공간의 스케일을 극대화해 무대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유령이 공중에서 내려오는 1막 마지막 장면은 은은한 조명 아래 몽환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이번 무대에서 투란도트 역을 소화한 크리스티나 피페르노는 '투란도트 스페셜리스트'의 면모를 어김없이 보여줬다. 2막2장에서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받고 '옛날 이 궁전에서'를 부르며 등장한 그는 선명한 고음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살리는 표현력으로 객석을 매료시켰다. 칼라프 역을 연기한 이탈리아의 대표 테너 마루티 누치는 탁 트인 발성과 깔끔한 고음 처리로 드라마틱 테너의 진수를 보여줬다. 특히 가장 많이 불리는 오페라 아리아 중 하나인 3막의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를 부르자 최고의 갈채가 쏟아졌다.

이번 공연에서 한국 성악가 중 유일하게 주요 배역을 맡은 류 역의 김은희의 가창도 발군이었다. 부드러운 음색과 서정적인 연기로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류는 '주인님 들어주세요' 곡에 애절한 감정을 실어 그대로 객석에 전달했다. 중저음이 두드러지는 티무르 역의 안드라스 팔레르디는 앞을 보지 못하는 늙은 왕의 역할을 뛰어나게 소화했다.

유치원을 다니는 아들,부인과 공연장을 찾은 오창섭씨(41)는 "유명한 아리아가 많은 '투란도트'를 가족과 함께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산카를로 극장의 진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고 말했다. 공연은 18일까지 계속된다. 17일 열리는 갈라콘서트에서는 '투란도트'의 정수만 골라 들려준다. 1588-7890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