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이 느꼈을 고통,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제12회 서울세계무용축제 초청작으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슬로베니아 국립 마리보르발레단의 '라디오와 줄리엣'은 독특한 작품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관계보다는 소녀 줄리엣의 심리에 초점을 맞췄다.

이 작품을 안무한 에드워드 클루그 슬로베니아 국립 마리보르발레단장(36 · 사진)은 14일 "이루지 못할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성의 내면 세계를 그리는 데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줄리엣 역 외의 무용수들을 모두 남성으로 캐스팅해 '남성으로 둘러싸인 세계 속의 줄리엣'을 부각시켰다. 그도 무용수들 중 하나로 무대에 선다.

'라디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 뿌리를 둔 작품이지만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 우선 영국 얼터너티브 록그룹 '라디오헤드'의 노래들을 접목했다. 콘템포러리 발레로도 볼 수 있는 '라디오와 줄리엣'과 얼터너티브 록음악의 결합이 신선하다. 또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에 기반한 작품 대부분이 두 연인의 만남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데 반해 '라디오와 줄리엣'은 그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는 줄리엣이 로미오의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이유를 "살아 있지만 죽은 상태나 마찬가지인 줄리엣의 고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연명을 《로미오와 줄리엣》과 라디오헤드의 이름을 합쳐 지을 만큼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얼터너티브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음악으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면서 "그동안 셰익스피어 고전을 바탕으로 한 무용의 동어반복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에 처음 온 그는 "예전 일본 나고야에서 열렸던 대회에서 한국 무용수가 1등을 차지한 것을 보고 한국 무용의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다"면서 "한국 영화 '밀양'을 인상깊게 봤다"고 덧붙였다.

루마니아 출생인 클루그는 2003년부터 국립 마리보르발레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2005년에는 슬로베니아에서 우수한 예술가에게 주는 프레세렌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독일 무용 행사 탄츠메세에서 "선배 안무가들을 단숨에 제쳐버릴 신예 안무가"란 평가를 받았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