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함정임씨(45)의 신작 소설집 《곡두》(열림원)에는 단편 10편이 실려 있다. 그 중 표제작 <곡두> 등 3편과 <환대> 등 2편 사이엔 밀접한 연관성이 있어 연작소설처럼 읽힌다.

<곡두>와 <자두>,<상쾌한 밤>은 전 배우자와 사별 혹은 이혼한 남녀가 결혼을 하기로 작정한 다음 생겨나는 일들을 화자를 바꿔가며 보여준다. 주로 여자의 가정사가 간단치 않기에 생겨난 일들이다. <곡두>에서 결혼을 앞둔 여자는 어머니의 권유로 배다른 오빠를 찾아 떠난다. 결혼식장에서 아버지 대신 자신의 손을 잡아줄 오빠를 여자는 '피의 부름처럼 본능적으로' 찾는다. <상쾌한 밤>에서는 여자의 오빠가 화자다. 잘나가는 펀드매니저였지만 이제는 동가숙서가식하는 신세로 전락한 그는 아내에게 한없이 고마워하면서도 혹여 아내가 헤어지자고 할까 두려워한다. 그렇잖아도 신산했던 그의 처지는 느닷없이 이복여동생이 나타나면서 더욱 꼬이게 된다. 그는 여동생과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그림 한장 보내는 걸로 일을 끝내려고 하지만,여동생의 존재가 자신과 아내를 잇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상황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표제작 제목인 '곡두'란 '환영'(幻影)을 뜻하는 우리말인데,함씨의 소설들은 환영처럼 불명확했던 관계와 상대방이 점점 선명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환대>와 <구름 한 점>은 식물인간이 된 아버지를 둔 두 자매의 이야기다. 두 작품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존엄성과 죄의식을 촘촘하게 보여준다. 자매 중 언니는 아버지와의 불화가 부친의 병을 불러온 게 아닌지 고민하고,동생은 아버지 병실을 청소하다가 호흡기를 건드린 탓에 부친이 돌아갔다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던 중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사람답게 죽어가는 건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게 된 동생은 자기 안에서 '품위있게 죽을 권리'란 답을 끄집어내고 안정을 찾는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