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술병을 든 봉두난발 사내가 강을 건너려다 빠져죽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남편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내 여옥이 지은 노래라는 설이 내려오는 고조선 시가 <공무도하가>.

소설가 김훈씨(61 · 사진)가 학창시절에 받은 감동을 모티브로 썼다는 장편소설 《공무도하》(문학동네)를 발표했다. 김씨는 "<공무도하가>에서 백수광부는 아무래도 인간의 현실이 너무 괴로워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씨의 《공무도하》 또한 강을 건너 저 너머로 가길 동경하지만,결국 질척대는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씨는 "인간의 비루함을 피할 수 없어 결국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작품에 모아놨다"면서 "하지만 비천한 현실에서 도망갈 수도,넘어갈 수도 없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점도 같이 그렸다"고 말했다.

소설은 일간지 사회부 기자 문정수,출판사 직원 노목희,청년시절 노학연대에 투신했다 배신자로 몰린 장철수,화재현장에서 귀금속을 빼돌린 소방위 박옥출 등을 중심축으로 삼아 진행된다. 김씨는 이 중 문정수의 눈을 통해 저수지 붕괴로 인한 수해,의붓여동생을 상습적으로 강간한 50대 아버지를 아들이 살해한 사건,기르던 개에게 죽은 소년의 일,크레인에 치여 죽은 여고생 사건 등 일간지 사회면에 날 만한 일들을 쭉 나열한다.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좌절한다. 문정수는 점점 기사를 쓰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 장철수는 고철을 건져 파는 신세로 전락하다 결국 신장까지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박옥출은 도리어 지역 유지가 되어 떵떵댄다.

소설 속에서 장철수가 통찰한 대로 '인간은 비루하고,인간은 치사하고,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 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

그나마 소설에서 노목희가 담당하는 책을 쓴 중국인 인문학자 타이웨이는 '이 세상을 안과 밖,이쪽과 저쪽으로 구분하지 않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김씨는 이 인문학자가 잠시 한국에 들렀다 떠나는 것으로 설정해 소설에 희망의 여지를 심어놓지도 않았다. 김씨는 "타이웨이는 인문주의의 아름다운 꿈을 가진 사람이지만 현실을 스쳐 지나가는 아득한 꿈일 뿐"이라면서 "나는 소설에서 희망을 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 역사소설을 주로 발표해온 김씨가 처음으로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인터넷 연재 당시부터 관심을 모았다. 김씨는 "역사든 당대든 내가 쓰려는 주제에 맞는 배경을 선택하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 등장인물 중 한명을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기자생활을 했던 건 사실이지만 사적인 경험과는 관련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