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대만 전시회의 갑작스런 행운에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대만의 '큰손' 컬렉터들이 4m 대작부터 소품까지 총 12점(7억원 상당)을 전량 사갔거든요. 올해 홍콩 아트페어,크리스티 경매에서 팔린 작품까지 더하면 연말까지 최소 20여점이 해외 기업 로비나 미술관에 설치될 것 같아요. "

'뮤턴트(mutant · 돌연변이)'를 주제로 지난 20일까지 대만 소카아트센터에서 열린 개인전을 마치고 귀국한 조각가 지용호씨(31)는 27일 들뜬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시 작품이 매진된 데다 추가로 6점을 예약 받아 놓은 상태"라며 "현대 산업사회의 산물인 '폐타이어'라는 독창적인 매체를 조각 작품에 사용해서인지 대만 컬렉터들의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 조각가 가운데 해외 전시회가 끝나기도 전에 출품작이 매진되기는 2007년 12월 중국 저장성 닝보(寧波)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말 조각가' 김선구씨에 이어 두 번째다. 지씨 작품의 이번 매진사례는 대만 미술시장도 한국 작가의 작품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국내 작가가 전속 화랑(가나아트갤러리)의 지원을 받아 판로를 개척했기 때문에 더욱 값진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지씨는 전통 조각의 재료 대신 '폐타이어'라는 독창적인 매체를 사용하면서도 대상을 표현하는 방식은 전통 조각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 그는 최근 3년 동안 미국 뉴욕 필립스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뮤턴트'시리즈 6~7점이 잇따라 낙찰되며 국내외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대작 '상어'는 2007년 11월 미국 뉴욕 필립스경매회사의 현대미술 경매에서 무려 14만5000달러에 팔리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동안 상어를 비롯해 사슴,코뿔소 등 동물만 제작해 왔는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사람과 동물의 변종 작업을 본격화했습니다. 동물을 직접 관찰하거나 책과 영상물을 보며 움직이지 않는 타이어의 오브제에 '운동성'을 담아냈지요. 골격과 근육을 해부학적으로 나눠 빚은 뒤 이를 조합하는 기법으로 작품에 생동감을 표현했고요. 이렇게 하면 동물의 근육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지요. "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욕망과 권력을 '뮤턴트'라는 주제로 풀어내기 위해 미켈란젤로식 정통 조각이 주는 울룩불룩한 생명감을 타이어로 형상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폐타이어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소통을 디자인하고 환경과 재생의 의미를 강조했다는 얘기다.

그는 "대만 컬렉터들로부터 작품 속에 대륙의 기질을 잘 버무려내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아마도 내면적으로 또 다른 인간의 욕망과 권력을 풍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익대를 거쳐 뉴욕대 대학원에서 공부한 그는 내년 8월에는 홍콩,2011년에는 서울에서 작품전을 열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