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상징되는 제일모직의 캐주얼 브랜드 '빈폴'이 22일 출시 20주년을 맞았다. 1989년 미국의 세계적 캐주얼 브랜드 '폴로'를 벤치마킹해 탄생했지만 20돌을 맞은 현재 '전 세계에서 폴로를 제친 유일한 토종 브랜드'라는 찬사와 함께 매출 4000억원대의 '국민 브랜드'로 성장했다. 해외 브랜드에 밀려 한 해에도 수십개의 국내 브랜드들이 명멸해 가는 현실에서 토종 브랜드의 자존심을 지킨 빈폴의 성장사는 패션 업계의 교과서로 통한다.

벤치마킹 대상 '폴로' 제쳐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해외여행 자율화와 소득 증가 등에 힘입어 캐주얼 문화가 확산되자 제일모직은 1989년 고소득층 대상의 고급 캐주얼 시장을 겨냥해 '빈폴'을 선보였다. 브랜드명은 세계적인 광고회사 덴츠가 제안한 것으로,'bean'(콩)과 'pole'(장대)을 합친 '콩줄기'(bean pole)라는 뜻.콩이 많이 나는 미국 보스턴 지역의 고풍스럽고 전통적인 이미지가 브랜드와 맞다는 의미에서 빈폴로 정했다고 한다. 또 영국 신사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힌트를 얻어 '신사와 자전거'를 접목,자전거 로고가 탄생했다.

1993년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에 들어왔다'는 광고 카피 문구로 빈폴의 인지도가 단숨에 높아지면서 당시 대학생 사이에선 '미팅나갈 때 입는 옷'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해외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고전하면서 빈폴은 위기를 맞는다.

한국인의 체형과 피부색에 맞춘 제품으로 야심차게 캐주얼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기는 했지만 '폴로의 아류''빈스러운 폴로' 등으로 취급받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난항을 겪었던 것. 1994년 빈폴 책임자들의 긴급회의가 소집될 정도로 급박한 상황까지 직면했지만 오로지 제품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각오로 재도전장을 던졌다.

20년 장수 비결은 브랜드 경영

빈폴은 '노세일' 정책을 선언했다. 브랜드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년 내내 세일이 난무하던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고품질과 철저한 AS 시스템을 도입해 소비자의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드디어 론칭 12년 만인 2001년,독보적인 존재였던 '폴로'를 제치고 트래디셔널 캐주얼군에서 1위를 차지했다.

빈폴은 브랜드 가치 경영을 실현한 국내 첫 패션 브랜드로 꼽힌다. 단기적인 매출 성과보다 빈폴만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자가 이 같은 성과를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다. 이를 위해 제일모직은 빈폴 사업부를 독립된 회사로 분리시키는 컴퍼니 제도를 채택했다. 대기업의 경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로 스피드 경영과 자율 경영을 실시한 것. 2003년 명동에 국내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플래그십 스토어(특정 브랜드 상품을 중심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극대화한 초대형 매장)를 선보여 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빈폴은 기존 브랜드의 강점을 살려 1998년 '빈폴 액세서리'를 독립시키고,'빈폴레이디스''빈폴골프'(2001년) '빈폴진'(2002년) '빈폴 키즈'(2003) 등 6개 서브브랜드를 갖춘 패밀리 브랜드로 성장했다.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론칭 첫해 30억원이던 매출 규모가 매년 평균 30% 성장해 올해는 150배 늘어난 45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이제 빈폴은 국내시장을 넘어 중국,미국 등 글로벌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최근 뉴욕 · 밀라노 · 도쿄 등 패션 선진국에 디자인 센터를 구축하면서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서의 도약에 본격 나서고 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