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명을 뚫고 뎅,뎅,뎅 종소리가 울리자 검은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이 줄을 지어 성당으로 들어온다. 새벽 5시20분.제대 앞에서 허리를 숙여 절을 한 수도자들은 제대 앞 양편의 가대(歌臺)에 자리를 잡고 청아한 소리로 기도를 바친다.

"주여,내 입시울을 열어 주소서.내 입이 당신 찬미를 전하오리다…."

22일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이렇게 기도로 시작됐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대로 수도자들의 하루는 기도와 일의 반복이다. 대성당에 모여서 드리는 하루 다섯 번의 기도와 미사,영적인 독서,그리고 노동.한가할 틈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들이 최근 들어 부쩍 더 바빠졌다. 수도회의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아 전시회,음악회 등 기념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데다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아진 때문이다.

왜관수도원의 역사는 1909년 독일 성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수도원이 선교사 2명을 서울로 보내 지금의 혜화동에 백동수도원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베네딕도회는 함경도 원산 근처의 덕원수도원 시절을 거쳐 1952년 6월 왜관에 터를 잡았다.

베네딕도회는 100주년을 맞아 지난달 30일 새 성당 봉헌을 필두로 역사 심포지엄,세계적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 초청 강연회를 잇달아 열었다.

독일 성오틸리엔수도원에서 돌아온 겸재 정선 화첩과 100년 역사의 사진 자료,유물 등을 보여주는 전시회(11월22일까지),기념 음악회(23일),세계 베네딕도회연합회 수장들인 총재아빠스회의(22~25일)도 꼬리를 문다. 오는 25일 정진석 추기경이 주례하는 100주년 기념미사에는 20여명의 총재아빠스(대수도원장)와 한국 천주교 주교단 등 60여명의 고위 성직자들이 참석한다.

"왜관수도원은 한국전쟁 이후 모두가 외면했던 한센병 환자와 폐병 환자를 보살폈고,교육사업과 농민 · 노동 · 인권운동 등에도 앞장서 왔습니다. 그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에 응답해온 것이 우리 수도회의 역사입니다. 앞으로도 물질문명 속에서 영적으로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오아시스같은 곳이 되도록 할 생각입니다. "

2001년부터 왜관수도원장을 맡고 있는 이형우 아빠스(63)는 22일 앞으로 수도원이 나아갈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영적인 것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을 위해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 "우리 수도원에는 은퇴라는 말이 없다. 90세 수사에게도 쉬라고 한다면 큰 욕이 된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이곳 수도자들은 나이가 들면 청소라도 하고,다리가 아프면 식당에 그릇 놓는 일이라도 하며 최선을 다해 노동한다고 한다. 왜관수도원에 유리공예실,금속공예실,목공소,출판사,농장 등의 일터가 있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100년 전 2명의 선교사가 일군 한국베네딕도회의 수도자는 140여명.왜관 본원에 70여명이 살고,나머지는 서울 · 대구 · 부산 · 남양주 · 화순 등지의 분원에서 생활한다. 특히 2001년에는 25년째 새로운 수도자가 들어오지 않아 폐쇄 위기에 처한 미국 뉴저지주의 뉴튼수도원을 인수해 수도자를 파견하고 있다.

이 아빠스는 "전체 인구가 줄면서 수도자들도 줄 것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우리가 잘 살면 많이 들어오고 그렇지 않으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수도원은 열려있는 공동체이니 언제든 와서 함께 기도하며 마음의 평화를 체험해 보시라"고 말했다.

왜관=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