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죽을 것인가,목말라죽을 것인가. 20세기가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물의 시대다. '

프랑스 석학 에릭 오르세나의 《물의 미래》를 관통하는 주제다. 경제학자이자 해양학자,소설가이기도 한 그는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문화 보좌관과 연설문 작성자를 지냈고 현재는 프랑스 학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2년간 물을 따라 전 세계를 취재하고 돌아와 물과 인류의 미래를 얘기한다. 전작 《코튼 로드》에서 목화를 주제로 세계화의 이면을 파헤치더니 이번에는 물을 주제로 인간 세상의 명암을 되비춘다. 학자다운 통찰력과 작가다운 글솜씨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그는 이 책에서 '종교전쟁,영토분쟁,석유파동보다 더 무섭고 파괴적인' 물 전쟁의 참상을 일깨우면서 '물은 21세기의 권력'이라고 분석한다. 물이야말로 '인류 문명과 역사를 뒤바꿀 최후의 자원'이다. 그런 점에서 물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치밀한 현장답사의 사실성 위에 은유와 상징의 묘미까지 얹어가며 물 이야기를 펼친다. 예를 들어 '왜 참치초밥이 아프리카 물 부족을 초래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물과 세계화의 비밀스런 문제를 얘기한다. 아프리카 모리타니 인근 해역에서 고기를 잡는 영세 어부들은 일본의 저인망 어선에 밀려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다. 결국 아프리카 식탁에서 생선이 자취를 감추고,사람들은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점점 많은 염소나 소 같은 가축을 기르게 된다. 이 가축들은 생선과 달리 담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물은 점점 고갈되는 것이다.

참치는 일본 미식가들을 즐겁게 해주는 동시에 아프리카의 지하수층을 마르게 한다는 사실을 알 리 없다. 이는 물 부족 문제가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와 엮여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호주에서 그는 '물먹는 하마'인 엄청난 농지와 맞닥뜨린다. 조상 대대로 물 귀한 줄 모르고 농사를 지어왔던 농민들은 가뭄이 심해지자 절망에 빠진다. 행정 당국이 사회복지사와 심리학자를 태운 '자살 방지 버스'를 보내 농민들을 보살펴야 할 정도다.

그는 또 빡빡한 치수 계획을 국가 주도로 실행하는 싱가포르와 중국,물은 넘쳐나는데 마실 물이 부족해 콜레라 등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는 인도로 향한다. 이어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해 식수로 전용하는 이스라엘과 강물을 어디에 쓸지 고민하다 벼농사에 도전했으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세네갈도 찾는다. 지구 온난화의 위기 앞에서 연대를 모색하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움직임도 포착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예측 가능한 자원'이지만 환경적 요인에 따라 끝없이 변덕을 부리는 심술쟁이기도 하다. 아마존 강의 유량은 해가 바뀌어도 거의 변동이 없고 라인 강이나 양쯔 강의 유량은 해에 따라 두 배가량 차이가 난다. 그런데 호주 달링 강의 유량은 무려 4700배나 달라질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지정학적 조건과 정치적 위기의 실상은 다르지만 물 위기는 국가나 지역적 연대에 의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유럽에 토마토를 수출하는 모로코의 경우를 보자.20t의 토마토를 기르는 데 2000㎥의 물이 필요하다. 토마토 20t을 싣고 모로코를 떠나 스페인으로 향하는 트럭 1대 뒤에는 20㎥의 물을 실은 물차 100대가 보이지 않게 따라오는 것과 같다.

어떤 현상 뒤에 숨은 물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가상수(virtual water) 개념'으로 보면,물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자원이자 다른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인 재화다. 그래서 '물의 생산과 소비는 권력과 밀접한 관계'인 것이다.

치수의 왕도는 없는가. 중앙정부가 주도해야 할까,지역의 자치단체에 맡겨야 할까. 정수와 식수 공급을 공공 서비스로 남겨둬야 할까,민영화해야 할까.

저자에 따르면 물은 세계화가 아닌 지역화를 통해 해결되어야 할 대표적인 자원이다. 방글라데시에 홍수가 난다고 해서 호주의 가뭄이 해갈될 수는 없다. 물 부족 사태는 기후 온난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지역마다 사정이 천차만별이고 한 지역에서 효과를 본 방법이 다른 지역에서도 유효하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캥거루와 지렁이,사막의 풍뎅이에게서도 물을 아끼는 기술,한 방울의 물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절약의 지혜를 본받아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