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10년 전 호르크스는 인간을 이해하는 휴먼 테크놀로지만이 미래에 살아남을 거라고 예견한 바 있다. "열려라 참깨!"라고 말하면 열리는 손잡이가 발명되었다고 하자.과연 시장성이 있을까. 말을 하는 것이 손잡이를 돌리는 것보다 쉽기는 하겠지만 인간 문화 속에 자리잡은 일상적인 습관에는 맞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인간의 일상적인 행위에 도킹하는 것만이 살아남는다.

호르크스는 신작 《테크놀로지의 종말》에서 이 주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파고든다. 왜 어떤 기술은 개발되었지만 대중화하지 못하고 사라졌을까? 아주 멋진 아이디어로 '뜨거운 기대'를 받았던 혁신적인 제품들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미래 기술의 조건은 무엇인가?

저자는 그 이유를 진화의 긴 시간 동안 생성돼 지금까지 내려오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보자.우리가 꿈꾸는 미래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아마도 운전이 필요 없는 '전자동 자동차'일 것이다. 이동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사고 위험이나 교통정체의 걱정도 없다. 이런 완벽한 기술이 있다니! 하지만 이 기술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기술이 아니라 자동차 운전의 '정신적 형이상학'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은 단순히 '거리의 이동'이 아니다. 자동차는 신체적 힘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을 체험케 하는 도구다. 발만 살짝 올려도 놀라운 속도를 내게 할 수 있다. 인간은 자동차 운전을 통해 이런 힘을 즐기는 것이다.

운전이란 인간의 강력한 지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행위인 것이다. 그런데 운전대를 자동차에 맡긴다? 게다가 안전과 기능을 보장받으려면 자동차 시스템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이는 인간의 기계 지배력을 역전시키고,자동차를 통해 표출되는 상하관계를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상실이다!

'똑똑한' 인공지능 냉장고는 정해진 먹을거리를 정해진 분량만큼 채워 놓는다. 그러나 이용자의 즉흥적 충동이나 예측불가의 식욕과 같은 '인간적' 일탈행위들을 허용하지 않는다. 전자책 역시 종이책을 쉽게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종이책에는 냄새가 있고 인쇄된 글자를 섬세한 손끝으로 느낄 수도 있다. 인간의 뇌는 수백만년에 걸쳐 이런 느낌과 함께 진화해 온 것이다.

"미래에는 많은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모두가 다 실용적이라는 말은 아니다"라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말처럼 인간의 미래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훨씬 나은 세상일 것이라는 추측은 머리에서 지우는 편이 낫다. 이 책의 부제처럼 인간은 똑똑한 기계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테크놀로지는 인간을 외면한 채 기계 그 자체가 하나의 원동력이 되어 자가발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혁신의 성패를 결정하는 경제성이나 사회의 흐름,인간의 오랜 습관과 욕구,문화체계와 같은 요인들은 무시한 채 제 스스로 기계적 진화를 거듭해왔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로봇 강아지 '아이보'가 그러하고,완벽하게 개발되었지만 실제 사용빈도는 낮은 화상전화,하이테크 개인용 전동 스쿠터인 '세그웨이'가 그러하다.

이 책은 실제 개발된 테크놀로지 기술들의 명암과 테크놀로지 진화를 촉진하거나 방해하는 요인 등을 다양한 방향에서 분석하고 성공하는 테크놀로지의 조건,앞으로 실현될지도 모르는 것들의 오류와 지향점 등을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제는 저자의 주장처럼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조금씩 개선하고 적응해가며 발전하는 자연계의 진화법칙을 따른 기술만이 '테크노 혁명(Technolution)'을 이뤄낼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진화를 이해해야 한다.

호르크스의 한 저작에 대해 아마존은 이렇게 평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미래학자들의 주된 고객은 책을 사는 평범한 우리가 아니라 결단에 필요한 도움을 목마르게 찾고 있는 기업들이다. " 이 말은 이번 신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사업이나 새로운 시장을 생각하고 있는 경영자와 제품 개발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박태일 현대경제연구원 컨설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