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연기론(緣起論)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무엇 하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책상 위의 전화기만 해도 중동산 원유의 부산물인 플라스틱과 금속,전선 등 다수의 공장에서 만든 부품들로 구성돼 있고,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 조립된 다음 복잡한 유통경로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더구나 '글로벌'과 '자유무역'이 대세인 지금 원료와 제품의 이동거리는 더욱 길어졌고,그 과정에 개입되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다.

따라서 누군가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청바지는 어디서 만든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옷에 붙은 라벨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가령 '메이드 인 페루'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해도 텍사스산 목화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방직한 다음 페루 리마에서 재단 · 재봉하고,세탁과 마무리 작업은 멕시코시티에서 한 뒤 로스앤젤레스에서 파는 식이기 때문이다.

《블루진,세계경제를 입다》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세계인이 선호하는 청바지의 탄생 및 유통과정을 통해 세계 패션산업과 무역,이에 관여하는 나라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품의 생산지를 표시하는 '메이드 인(Made in) OOO'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베테랑 저널리스트의 폭넓은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청바지가 단순히 섬유와 실로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라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희망과 꿈이 담긴 것임을 알려준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손꼽히는 목화 감정사인 메만은 감정사를 그만두고 카페를 차려 커피와 치즈를 팔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목화감정사는 그가 매기는 품질 등급에 따라 목화 가격이 달라지므로 괜찮은 직업인데 왜 그럴까. 일거리가 점점 줄고 있어서다. 자유무역 확대로 국제 목화 시세가 계속 하락한 탓에 생산량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목화의 씨를 앗아 솜을 만드는 조면공장의 작업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자욱한 먼지를 입을 가린 손수건 하나로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목화 먼지 외에 살충제와 각종 화학물질까지 들이마시며 일을 해야 한다. 목화 재배지는 지구상 농지의 3%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살충제의 4분의 1,제초제의 10%를 소비한다.

청바지 한 벌에는 평균 0.75파운드의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다. 청바지 염색을 천연인디고가 아니라 대부분 합성인디고 염료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물이 필요하며 화학염색제가 섞인 폐수를 개도국에선 정수하지 않은 채 흘려보내기 때문에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면서 "블루는 결코 '쿨'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 캄보디아의 사례를 들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 섬유시장에 대한 캄보디아의 쿼터를 늘리는 대신 캄보디아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착취를 일삼는 공장을 적발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사단 파견을 허용토록 캄보디아와 무역협정을 체결했다.

그 결과 캄보디아는 2001년부터 세계에서 유일하게 ILO의 노동실태 감찰을 받는 나라가 됐고,근로자 인권 보호를 위한 법령 정비에 나섰다. 이를 통해 나이키 등의 기업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상생과 윈윈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아제르바이잔부터 캄보디아,이탈리아,중국 등 세계 각국을 누비면서 청바지 한 벌에 담긴 국제경제시스템,자유무역의 논리와 모순을 자연스럽게 부각시킨다. 굳이 공정무역이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따뜻하고 공정해져야 하지 않겠느냐고,그래야 세계의 노동자들이 보다 훌륭한 조건에서 일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호소하고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