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탄 아흔넷의 90대 수사부터 앳된 열아홉 살 수사까지 70명의 수도자들이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에게 맡긴 채 살아가는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몸이 아파 거동을 못하는 사람만 빼고는 모두 새벽 5시20분 독서기도부터 저녁 8시 끝기도까지 하루 다섯 차례 함께 모여 기도한다. 또 낮에는 각자 일터에서 유리공예실,금속공예실,목공소,출판사,인쇄소,논밭 등에서 노동한다.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성베네딕도가 '기도하고 노동하라'고 가르친 대로 기도와 노동을 생활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왜관수도원이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았다. 국내 최초의 가톨릭 남자수도원인 왜관수도원은 1952년 6월에 설립됐지만 연원은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 대주교의 요청으로 독일 오틸리엔수도원에서 파견된 2명의 수도자들이 그해 12월 서울 백동(현재 혜화동)에 세운 수도원이 그 시초다.

교육,의료,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던 서울수도원은 이후 함경남도 원산 인근의 덕원으로 옮겼다. 당시 덕원수도원은 덕원신학교도 운영했는데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고(故) 지학순 주교를 비롯해 김남수 주교,윤공희 대주교 등이 이곳 출신이다. 그러나 덕원수도원은 남북 분단 이후 공산당에 의해 폐쇄됐고,수도자들은 체포,구금,고문,처형 등 공산 정권의 갖은 탄압을 받다 본국으로 송환됐다. 이 때 살아남은 한국인 수도자들이 월남해 1952년 다시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이 왜관수도원이다.

베네딕도를 한자로 음역한 '분도(芬道)수도원'으로 유명한 왜관수도원은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마련한다. 먼저 2007년 4월 화재로 피해를 입은 성당과 수도원 건물 일부를 재건축해 오는 30일 '성전 봉헌식'을 가질 예정.이어 다음 달 11~12일에는 한국교회사연구소와 공동으로 한국 베네딕도회의 역사에 대해 10명의 발제자들이 분야별로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도 연다.

또 다음 달 19~25일을 백주년 행사주간으로 정해 세계적 영성가인 안셀름 그륀 신부(독일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 초청 순회강연을 마련한다. 겸재 정선 화첩 전시회(20일부터),기념 음악회(23일),100주년 기념미사(25일) 등이 잇따른다. 정진석 추기경이 주례하는 기념미사에는 각국 수도원에서 온 축하사절을 비롯한 국내외 가톨릭 고위 성직자 60여명과 사제 및 수도자 등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특히 겸재 화첩은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아파스(대수도원장)가 1925년 한국을 방문했다가 수집한 것으로,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독일 수도원이 2005년 영구임대 형식으로 반환했다. 화첩에는 21점의 미공개 그림이 실려 있으며 전시회에서는 원본과 영인본이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