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진영은 말 그대로 드림팀이었다. 퍼스트 레이디 출신 대통령 후보에,마이크로트렌드의 저자이자 최고의 조사전문가 마크 펜,커뮤니케이션 구루로 불리는 실력자 하워드 울프선,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부터 전략가로 이름을 날린 맨디 그룬월드 등이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이처럼 최고의 팀이 실패하는 경우는 의의로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국가대표 농구팀이나 야구팀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어이없이 무릎을 꿇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경영전략 컨설팅 회사인 모니터그룹의 컨설턴트인 다이애나 맥레인은 '드림팀' 실패의 원인을 리더 간 갈등에서 찾는다. 국내 기업에서도 종종 발생하는 '형제의 난'도 이런 시각에서 조명해볼 수 있다. 기업을 이끄는 사령탑에서 발생하는 반목.이를 풀어내는 해법을 맥레인의 '기업을 죽이고 살리는 리더 간의 갈등 관리'를 통해 찾아보자.

◆양자택일의 함정

1985년 5월 말.'애플' 이사회가 열렸다. 안건은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 해임안이었다. 이사회 분위기는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잡스는 펩시콜라 사장을 지낸 존 스컬리를 직접 애플에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사회에서는 "존 스컬리가 애플을 망치고 있다"며 맹비난을 쏟아냈다. 스컬리 역시 뒤지지 않았다. 잡스를 칭해 "내가 '괴물'을 키웠다"며 강하게 맞섰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표 대결이 이어졌다. 승자는 스컬리였다. 이사회 멤버 중 단 한 명만이 잡스 해임안에 반대했을 뿐이다.

당시 애플의 문제는 부진하기 짝이 없던 매킨토시 PC사업에 있었지만 두 경영진의 깊은 반목으로 5000명에 달했던 애플 직원들은 그로부터 10여년간 이어진 회사의 몰락을 견뎌내야만 했다.

맥레인은 잡스와 스컬리의 다툼을 '양자택일 논리의 함정'으로 설명했다. 스컬리가 합류한 지 2년 만에 매킨토시 사업이 악화되자 스컬리는 그 와중에 잡스의 독선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잡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매킨토시 사업의 부진을 유통관리를 못한 스컬리의 잘못으로 돌렸다. 두 사람에게 남아 있는 선택은 하나였다. '누가 회사에 남을 것인가. '

◆관계의 자산과 부채를 파악하라

애플의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잡스와 스컬리라는 최상의 콤비가 엮어낸 최악의 결과를 돌릴 수 있는 방법은 '관계 재설정'에 있었다는 분석이다. 관계 재설정을 위해선 '관계자산'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배울 수 있거나 도움이 될 수 있는 상대방의 강점이 모두 관계자산에 해당된다. 잡스에겐 스컬리의 꼼꼼한 관리자적 기질이 자산이 될 수 있었고 스컬리에게는 잡스의 창조성이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는 부채를 파악하는 것이다. 부채는 상대방에게서 느낀 단점과 아쉬움이다. 잡스에겐 치밀한 계획이 없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 부채다. 반면 스컬리는 방어지향적이고 모든 것을 관리하려 든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다. 맥레인은 "관계의 자산과 부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 간의 갈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관계의 변화를 시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계 감수성을 높여라

문제점을 파악했다면 변화의 시초를 모색해야 한다. 맥레인은 기업들에서 볼 수 있는 리더 간의 갈등을 '관계감수성'으로 풀 수 있다고 조언한다. 관계감수성(relational sensibility)은 리더들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도록 서로 돕는 것을 통칭한다. 예컨대 호기심과 용기,겸손과 희망,이해와 인정,섬세함과 새로움,관대함과 생산성,공감과 책임감 같은 것을 뜻한다.

잡스와 스컬리처럼 흑백논리로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면 답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갈등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될 뿐이다.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들은 서로의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맥레인은 "수익성 향상,비용 절감,제품 개발 등 여러 문제에 있어서 기업의 리더 간에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첨예한 의견 대립이 일어날 때 상대가 먼저 양보해주길 바라는 '버티기 게임'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점을 바꿔보는 것이 필요한데 이때 쓰이는 것이 바로 관계감수성이다.

링컨에게 배워라

관계감수성을 현실로 만든 대표적 사례는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같은 당의 윌리엄 시어드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장관에 임명했다. 결국 이들은 링컨으로부터 인간적 감동을 느끼고 동지적 관계를 맺게 된다.

그렇다면 관계감수성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맥레인은 리더들이 새로운 감수성을 계발하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우선 현재 사고방식에 도전하는 아이디어에 항상 자신을 노출시켜야 하며,사람과 상황을 예리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어렵더라도 새로운 틀에서 상황을 해석하고 관계를 재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용준/김현예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