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술(CT) 비즈니스의 성공 요건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킬러 콘텐츠'를 기획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CT가 문화콘텐츠의 성공변수로 떠올랐지만,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자칫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때 아시아 시장에서 잘나가던 한국영화의 위력이 시들해진 것도 CT가 뒤처져서가 아니다. 스토리와 소재가 빈곤한 탓이다.

CT는 정보사회의 최대 비즈니스 분야인 콘텐츠산업을 급성장시킬 수 있는 '지렛대'같은 존재다. 지렛대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토양을 정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문화와 기술을 아우를 수 있는 전문가그룹의 육성이다.

둘째,스토리 창작 교실을 활성화하는 등 이야기산업의 저변 확대다.

셋째,CT분야에 대한 지속적 투자다. "닌텐도 위(wii)도 상업적으로는 전혀 쓸모 없어 보였던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어리석은 실험들이 밑거름됐다. " 호주 출신의 대표적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의 지적은 CT산업의 지향점을 말해준다.

◆연구개발 국가 예산 0.7%에 불과

국내에서도 CT 관련 연구개발(R&D)과 인력 양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0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국내 최초로 CT대학원을 개설했다.

서울대 정보문화 연합전공 과정 등 각 대학에 이공계와 비이공계를 통합한 연합 전공과정도 생겼다. 연세대 중앙대 서강대 등 전국 30여개 대학은 문화콘텐츠 연구소를 설립했다. 부천 광주 부산 청주 목포 전주 등에서는 지역 대학 CT 관련 학과와 연구소 등이 클러스터를 만들어 실무 인력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5대 콘텐츠 강국을 목표로 오는 2013년까지 64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지만,CT의 원천기술 개발비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0.7%에 불과하다. CT를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환경기술(ET) 항공우주기술(ST)과 함께 '미래 유망신기술 6T'로 키우겠다는 국가 비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국내 민간기업이 영세하고 핵심 기술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 정부 차원의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후죽순 생겨난 관련 학과와 엉터리 커리큘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의 한 교수는 "전문가층이 얇고 중앙연구소도 없어 질적 수준은 크게 떨어지는 현실에서 대학 간 이권다툼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며 "연구실적과 교육과정의 실질적 통합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예술과 과학,비즈니스의 통합 시급

대학 내 석 · 박사 혹은 연구원 중심으로만 인재를 육성하는 방식도 문제다.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메가 두뇌'는 정규 교육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발표한 영화 방송 음악 만화 게임 등 5대 장르의 인력양성 방안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문화인력 확보가 어려운 이유로 '사람은 있지만 자질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모든 장르에서 40%를 웃돌았다. 예술고등학교의 교과과정은 대부분 전통예술 중심이고,일반 고교에서도 통합 교육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게 주요 원인이다.

'창조산업'에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8% 이상을 투자하는 영국의 경우 '창의적 파트너십' 사업을 통해 건축가,과학자,멀티미디어 개발자,미디어 아티스트 등 전문가와 학교 간에 장기간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36개 지역,1100개 학교에서 교사들과 논의한 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테크닉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예술적 상상력과 테크닉을 스스로 체득하도록 이끈다. 또 3년간 250만 파운드를 투자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교내에서 연극,음악,영화 제작 등 높은 수준의 문화를 최소 일주일에 5시간 이상 접할 수 있도록 했다.

과학과 예술분야의 연구자들이 산업계와 소통하는 '만남의 장'도 절실하다. 1978년부터 오스트리아 린츠에선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행사가 해마다 열린다. 예술과 기술부문 리더들이 모이는 자리다.

본래 철강도시였던 린츠는 현재 도시 전체가 거대한 예술,학술공간으로 변모했다. 지난 30년간의 노력으로 이 도시는 2009년 유럽연합이 정한 '유럽 문화의 수도'로 공인됐다.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 컴퓨터그래픽 전시회 '시그라프(SIGGRAPH)'도 아티스트와 비즈니스계의 잔치마당이다.

국내에서 이와 비슷한 국제행사를 3년째 열고 있는 양현승 KAIST 교수는 "2만~3만명이 참여하는 유럽과 미국의 행사를 규모면에서 따라잡을 수는 없겠지만 학술적인 정보 교환의 마당으로 자리잡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음악계의 사정은 좀 나은 편이다. SM엔터테인먼트가 장리인과 한경 등 중국인을 국내에서 가수로 키워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교육시스템이 대표적인 모범 사례다. 박진영도 태국인 쿤을 발굴해 트레이닝시키고 있다.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는 가수들의 현지화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은 "일본의 자본,한국의 CT,중국의 풍부한 인력이 제대로 결합된다면 아시아 스타가 아니라 월드 스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밝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