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별의별 직업이 다 있지만 '납관부(納棺夫)'는 생소하다. 납관부란 죽은 사람을 깨끗하게 씻겨 작별의 화장을 해 주고 수의를 입혀 관에 넣는 일을 하는 사람.

《납관부 일기》의 저자도 그런 직업을 갖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시인이나 화가들과 어울려 노느라 파산하게 된 그는 아들의 분유 값도 대지 못할 정도로 코너에 몰렸다. 부부 싸움 중 아내가 집어던진 신문의 구인난에서 상조회사 직원 모집 광고를 발견한 그는 그 회사에 입사했고 염습과 입관 작업을 맡게 됐다.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에 관해 생각하며 쓴 것이 《납관부 일기》다. 지난해 일본에서 히트한 영화 '굿바이'의 원작이기도 하다. '납관부'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직업이다. 그의 숙부는 집안의 장손이 그따위 일이나 하느냐며 일을 그만둘 때까지 연을 끊겠다고 했고 아내는 '더럽다'며 잠자리를 피했다. 그도 시신을 편하게 대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옛 연인의 아버지를 염습하게 됐다. 땀을 흘리며 염을 하는 자기 옆에 조용히 다가와 땀을 닦아 주던 옛 연인에게서 그는 '경멸이나 서글픔,동정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는,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초월한 무언가'를 느꼈고 마침내 자기 일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자 죽은 이들을 바로 볼 수 있게 됐다.

삶과 죽음을 대하는 그의 철학은 생사의 교차점에서 발견한 '알 수 없는 빛'으로 승화된다. 아버지를 잃고 슬픔에 빠진 옛 연인의 눈동자와 서먹한 관계를 참고 병문안을 간 자신에게 '고맙다'고 속삭인 숙부의 얼굴,엄마의 죽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 소녀 앞에서 그는 '기묘하고 희미한 빛'을 만났다. 이 빛은 죽음의 영역에서 어둠과 두려움을 걷어 내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기도 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