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바깥 세계로 나오는 순간 폭력에 에워싸여요. 이런 아이의 모습이 저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지 아세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근원이 폭력이라는 가혹한 진실이에요. "

정찬씨의 소설집 《두 생애》에는 폭력과 고통이라는 '가혹한 진실'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작품들이 실렸다.

<폭력의 형식>에서는 사고로 부모를 잃은 후 주변 사람들의 폭력에 시달리던 소년 광호가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광호는 이모부에게 도움을 받으며 희망을 품어 보지만,여동생이 이모부의 상습적인 성폭력에 시달린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광호는 이모부처럼 가해자가 된다. 광호에게 이모부는 희망을 준 사람이었기에,그를 증오하며 희망을 버리기에는 악몽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고통과 공포가 폭력을 어떻게 재생산하는지 서늘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폭력과 절망 속에서 애잔하게 피어나는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애인을 둔 죄로 경찰에게 고문과 성폭행을 당해 임신까지 한 <희생>의 희우는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그럼에도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슬픔에 감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통찰한다.

표제작 <두 생애>는 공감의 힘이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을 감동적으로 포착해 낸 수작이다. 암살 기도 등 폭력이 낳는 고통을 통해 신을 느낀 교황과 고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한 소년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나'는 이들과 자신의 고통이 연결되면서 '사랑이 샘솟는 경험'을 하게 된다.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온 고통이 내 몸 속으로 스며듦으로써 분리된 두 존재가 연결되었다. 사랑을 불러일으킨 것은 고통이었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