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귀천'(歸天)했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지상의 모든 굴곡을 겪고 하늘로 돌아간 '인동초'.그의 하늘길엔 어떤 풀꽃이 동행했을까.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젖던 패랭이꽃이었을까,'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팔랑거리던 코스모스였을까.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온 그의 삶은 투옥과 연금,망명과 투쟁의 역사만큼 무거웠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점인 '하늘'로 돌아가는 길은 한없이 투명한 공기처럼 맑고 가볍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영육도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오른다.


천상병 시인이 30년 전 '귀천'을 쓸 때도 그랬을 것이다. 삶의 아픔을 뛰어넘는 초월적 정신세계.세상에 대해 미련도 집착도 없는 무욕의 경지….'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하늘로 돌아가면서 동반할 것이라고는 이슬과 노을밖에 더 있겠는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세상을 달관한 시인의 독백도 사실은 고통의 극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도 대학 시절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물 고문과 전기 고문을 받았다.

결국엔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상태로 몸이 피폐해졌다. 고문 후유증을 술로 달래며 심한 자폐증상까지 보였던 그는 '영혼의 간호사'인 아내를 만나 거듭났고 20여년을 아이처럼 살다 갔다.


그는 자신에게 녹록지 않았던 세상에 무욕과 관조의 모습으로 대응했다. 어둡고 무거울 수 있는 죽음마저도 허무나 슬픔으로 대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잠시 다녀가는 소풍지이고 돌아가야 할 곳은 하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대가들은 진흙 속에서 연꽃을 발견한다. 한발짝 물러나 전체를 보고 세상을 조감한다.


한국 정치사를 이끈 거인의 마지막 길.언젠가 우리도 돌아가야 할 그 '하늘'의 빛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야 지상의 '소풍'을 아름답게 끝낼 수 있을지 되돌아보게 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