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자신을 모델로 한 육감적인 여체,젊은 여성의 절제된 나신,말과 장미를 배경으로 한 원초적 몸짓,나무 · 계곡과 조화를 이룬 성애 장면,젊은 남녀의 러브스토리에 파스텔톤 이미지를 접목한 그림….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화면에 담아낸 고품격 에로티시즘 전시회가 열린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오는 18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펼쳐지는 '춘정(春情)과 순정(純情)사이'전이다. 참여 작가는 '생활의 중도' 시리즈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화가 이왈종씨를 비롯해 이숙자 구자승 오용길 김재학 이두식 전준엽 가국현 김일해 김영대 류영도 김인화 임종두(회화),김일용 이일호 신일수씨(조각) 등 16명.현대인의 사랑과 성을 흥미롭게 묘사한 40여점을 선보인다.

이왈종씨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최근작들로 인간의 몸을 '표현'하는 방식은 물론 '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이후 한국 현대미술에서 춘화도의 흐름을 탐색할 수 있는 자리다.

제주에서 작업하고 있는 이왈종씨는 잠재된 성의식을 리얼하게 풀어낸 춘화도 '생활의 중도' 시리즈 3점을 건다. 1988년 2월 청작화랑의 기획전 '15인의 두방'전에 출품됐지만 당시 전시회를 주도한 운보 김기창의 반대로 걸리지 못한 작품이다. 지금이야 크게 문제되지 않을 그림이지만 그 때만 해도 춘화도를 화랑에 내걸기에는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이었던 것.

20여년 만에 공개된 이 작품은 성애의 관능을 옛 풍속화 기법으로 그려냈다. 특히 성행위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생활의 중도Ⅰ'은 욕정을 감싸 안으려는 내면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했다.

'보리밭 화가' 이숙자씨 역시 '이브의 보리밭''꽃처럼,나비처럼' 등 누드화 3점을 출품한다. 자신을 모델로 한 관능적인 여체와 보리밭을 결합시켜 에로티시즘을 추구한 작품이다. 색채의 묘미를 살리면서 형체의 진미를 함께 보여주는 그의 회화는 보이지도 않고,들리지도 않는 침묵처럼 묘한 매력을 풍긴다.

구자승씨의 '구애''누드'는 여인의 모습을 절제된 선과 색감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여체의 아름다움을 극사실적으로 그려내 관능미보다 청초함이 먼저 다가온다. 오용길씨의 '5월'을 비롯해 이두식씨의 '축제',임종두씨의 '생생',김인화씨의 '장밋빛 여신'도 사랑과 성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들.육감적인 포르노그라피와 차원이 다른 미감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손성례 청작화랑 대표는 "벌거벗은 춘화도가 때론 천박한 에로티시즘으로 폄하되지만 성과 사랑이라는 테마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의 절대적인 대상"이라며 "이전 전시회를 통해 한국적 에로티시즘의 활발한 모색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화랑 측은 외설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관람객을 성인으로 한정했다.

관람료는 3000원.(02)549-311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