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이란 없었다. 조선이 개국한 지 200년째인 1592년에 있었던 사건은 임진왜란이 아니라 근대 수백년간 동양에서 일어난 전쟁 중 가장 크고 격렬했던 국제전인 조일전쟁이었다. '

재미 사학자 백지원씨는 신간 《조일전쟁》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이 전쟁에 3개국 50여만명의 대병력이 투입됐고 현대전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무기가 동원됐으며 20만명 이상의 전사자가 생긴 데다 조선인 피해자만 200만명에 이르는 대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전쟁은 왜 임진왜란으로 불렸을까. 전작 《왕을 참하라》에서 무능한 지도자들을 질타했던 저자는 '전쟁의 참혹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전쟁의 정황들을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조일전쟁은 '세계 최강 해군국 조선과 세계 최강 육군국 일본의 격돌'이었다.

당시 조선 수군은 척당 20문 안팎의 강력한 함포를 장착한 '판옥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바닥이 평평한 2층 구조의 판옥선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200t급 전함이었고 정원은 164명이나 됐다. 판옥선 한 척은 일본 배 5~10척의 전력을 상쇄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조선 수군의 주 전략인 함포사격이 더해졌다.

작고 얇은 일본배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일본 수군은 전함을 갖추지 못하고 수송선과 지휘선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쓸 수 있는 전략은 선상 육박전뿐이었다. 사실 일 수군은 일본에서 수군으로 훈련 받거나 해전을 경험한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120여년의 내전을 거치는 동안 잘 단련된 육군 정예부대였다. 칼과 창의 달인이었으며 군의 규율도 엄중했다. 부대별로 10~20% 정도의 조총병을 보유했다. 그때 일본의 조총 생산량은 전 유럽의 조총 생산량과 같았다. 지휘관들은 실전 경험이 많았으며 대부분 영주였다. 그래서 병사들의 충성심도 강했다.

이처럼 조일전쟁은 단순한 '왜란'이 아니라 세계 최강 해군과 육군국의 대전이었다는 것.조선 수군의 전력을 조일전쟁 4년 전에 일어난 영국과 스페인 무적함대의 '칼레 해전'과 비교한 자료도 흥미롭다.

그는 판옥선이 거북선보다 훨씬 큰 위력을 발휘했으며,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라 목선이었다는 것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이 해전의 승리를 이끈 영웅이긴 하지만 업적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지적한다. 알려진대로 23~24전 연승이 아니라 16전 13승 3패였다는 것.그런데 훗날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이순신을 '성웅'으로 만들면서 '거품'을 입혔고 거북선도 무적선함으로 돌변했다는 얘기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