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은 마음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취업 재수,삼수까지 하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있지만 50대뿐 아니라 40대도 직장에서 쫓겨나는 아픔을 겪고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근로자들도 강력한 노조의 보호 아래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비정규직법 개정 소동에서 보듯 정부와 한나라당,민주당,노동계는 주요 현안에 대해 자신들의 주장만을 고집할 뿐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랫동안 강단에서 노동경제를 가르치고 노동부와 노사정위원회,서울지방노동위원회 등에서 노동정책 자문을 담당하며 노사관계를 조정해온 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가 《전환기,한국 노동시장의 길을 묻다》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한 한국 노동정책의 방향과 노사관계 해법을 모색하면서 노동시장의 주요 현안에 대한 과제와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멀게는 199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대부분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벌어진 노동 이슈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이슈들은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노동현장에 남아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때 극렬했던 노사관계는 수치상으로 안정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대립적인 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13년간 유예돼 2010년 시행될 예정인 단위사업장의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 금지는 올 하반기 노사관계의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10년 만에 우리나라를 다시 덮친 경제위기,10년 만의 정권 교체라는 전환기적 시점에서 그가 노동계와 재계,정부에 주문하는 것은 명료하다. 노사관계가 안정되고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거품이 확 줄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혜택을 누리는 대기업과 금융기관,공공부문의 근로자,양적 팽창을 지향하는 대학과 교육 정책,비정규직의 희생 위에서 보호받는 정규직 근로자 모두 개혁과 선진화의 대상이라는 점을 일관성 있고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거품 빼기,유연성 제고가 정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노사 간 대타협과 적극적인 통합의 노력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은 10여개 주요 일간지에 실린 200여건의 기고문과 인용된 기사의 글을 토대로 구성돼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 관계자나 상생의 노사문화를 희망하는 노사 관계자,노동 이슈에 관심이 있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