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넘으면 대학로 소극장엔 비명 소리가 가득하다. 더위를 쫓기 위해 여름 연극계가 '밤 10시의 공포 콘텐츠'를 내걸고 밤마다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특히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공포연극들은 작고 폐쇄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만큼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실감나고 소름끼친다.

◆공포연극의 대표작 '오래된 아이'=15년 전 시각장애인 엄마와 목사인 아빠를 부모로 둔 한 여자 아이가 사라졌다가 성인이 되어 나타난다. 갑자기 찾아온 이 아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술렁이고,15년 전 축제날의 비밀이 서서히 벗겨진다. 유머와 감동이 뒤섞인 이 연극은 무대 위 스토리에 빠져들 때 쯤 객석에서 갑자기 귀신이 등장해 원초적인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시각과 청각을 반복적으로 자극해 객석 곳곳을 으스스한 분위기로 몰아 넣는다. 오승수 연출이 2007년 첫 선을 보인 '오래된 아이'는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구성과 전개로 스릴러 연극의 대표작이 됐다. 지난 19일 대학로 공연에서 매진 기록을 세웠다.

◆은근히 무서운 '버려진 인형'=어떤 죽음과 관련한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강원도 정선을 찾은 여기자가 겪는 기묘한 사건을 그리는 '버려진 인형'은 시청각적 공포보다는 심리적 공포체험에 초점을 맞춘다. 일제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인형사에 대해 전설을 바탕으로 한 공포멜로극.실사 크기로 제작한 인형은 공연 전반에 걸쳐 섬뜩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8월31일까지. 서울 대학로 두레홀 4관.(02)741-6135

◆옴니버스 공포연극'악! 악몽'=악몽을 소재로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남자와 여자의 두 가지 버전으로 그린 '악! 악몽'도 색다른 공포연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자의 이야기는 해부용 시체들이 살아나는 기담.해부용 시체를 닦아 놓으라는 교수님의 지시에 마지 못해 시체실에 들어간 주인공은 사고로 잘린 시체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이는 통에 놀란다. 8월30일까지. 서울 대학로 두레홀 3관.(02)741-5978

◆귀신 없이도 무서운 '낯선'=서정적이고 탐미적인 시들을 남긴 작가 루퍼트 브룩의 유일한 희곡을 바탕으로 한 심리공포 연극 '낯선'도 지난 7일 막이 올랐다. 괴물도,귀신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런 존재들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탐욕과 광기가 주는 공포감은 어떤 공포물보다 무섭다. 8월23일까지. 서울 대학로 까망소극장.(02)3672-8868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