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골목을 얼굴로 친다면,싱싱하고 풋풋한 젊은이의 얼굴보다는 초로에 접어들어서 잔주름이 보일 듯 말 듯한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온갖 일을 다 겪고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연륜이 어려 있다면 젊은이들은 어머니의 정과 같은 따뜻함으로 위로를 받을 터이다. '

원로 수필가 원종성씨(72)의 수필집 《인사동 골목은 좁아야지》(피쉬)에는 제목 그대로 인사동에 대한 글이 여럿 담겨 있다. 원씨가 인사동과 깊은 인연을 맺은 건 약 5년 전,그가 주간으로 있는 문학 월간지 '월간 에세이' 사무실을 인사동으로 옮기면서부터다. 베스트셀러 수필집 《향 싼 종이에선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 난다》와 중 · 고교 교과서에 실린 수필을 쓴 수필가이자 티센크루프 동양엘리베이터 회장 등을 지낸 기업가였던 그는 인사동에서 문학 활동쪽에 무게중심을 두는 삶을 시작한 것이다.

원씨는 1000만명이 살고 있는 대도시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서 예스러운 멋을 간직하고 있는 인사동이 그 매력을 잃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그는 서울 어디든지 골목은 없고 거리들만 있을 뿐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은 서울에서 인사동만은 '인사동 거리'라는 말보다는 '인사동 골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유일한 장소라고 강조한다. 산뜻하게 갈고 닦은 '숍'이나 거인 같은 현대식 건물들,외래어 간판보다는 올망졸망한 구멍가게와 옛집이 인사동 골목의 주인으로 걸맞다는 뜻이다. 원씨는 그런 마음을 "외래어 간판이 인사동 골목에서만이라도 행세를 못 하게 인사동 성질머리가 더욱더 괄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절하다"고 표현했다.

그런 바람은 인사동 골목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원씨에게 한지 더미가 켜켜이 쌓여 있는 인사동 지물포는 어린 시절 날리던 연을 기억나게 하고,좌판 위 뽑기니 오징어니 엿이니 하는 먹을거리들은 난장의 추억을 되살려 준다. '유소년 시절의 추억을 알알이 내 마음속에서 길어낼 수 있다니! 참으로 마음속 이목구비란 선녀의 두레박질과 같다.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