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링불》은 편지 한 통을 매개로 경주에 있는 첨성대의 비밀을 하나씩 파헤쳐간다. 소설가와 방송작가인 두 저자는 포항지역의 설화에 나오는 연오랑 · 세오녀와 첨성대를 세운 신라 선덕여왕,영일만의 지명학적 관계를 씨 · 날줄로 엮는다.

선덕여왕은 최초의 여왕 자리에 오른 인물로 여러 업적을 남겼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첨성대다. 그런데 《어링불》의 저자들은 첨성대의 용도가 '천문대'가 아니라 '용광로'였다고 주장한다. 별을 관측하려면 높은 산에 세웠을 텐데 첨성대는 낮은 구릉지에 있고,벽에 난 창문도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드나들기에는 너무 불편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천문을 연구했다고 보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2000년 전 연오랑 · 세오녀 부부가 영일만에 용광로를 세우고 쇳물 끓이는 기술자로 살다가 그 기술을 탐낸 일본인들에 의해 납치돼 현해탄을 건넌다. 500여년 뒤,선덕여왕이 이를 알고 서라벌 반월성(지금의 경주) 앞에 첨성대를 세운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무기를 생산하는 데에는 용광로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또 하나. 조선시대의 유명한 지리학자 이성지가 영일만을 둘러보고 심상치 않은 쇠의 기운이 흘러 훗날 많은 사람이 몰려 살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1970년대 쇳물이 끓는 거대한 공장과 굴뚝이 세워지니 그것이 바로 '포스코'였다는 것.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