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젊은 예술가들이 뉴욕으로 몰려드는 이유는 뭘까. 바로 '뉴욕에 예술가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세계 문화예술 산업의 메카인 그곳에는 수많은 성장의 발판이 마련돼 있다. 패션과 미술,음악,영상,문학 등 문화예술 산업의 핵심 인물과 환경이 이만큼 집약된 곳은 없다. 마크 제이콥스 매장을 찾아 길을 묻다 보면 "마크의 매장은 저 길모퉁이에 있습니다. 마크와 전 친구죠"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친구따라 농구하러 갔다가 유명 그룹과 친해지고 그들의 음반 표지 디자인을 맡기도 한다.

뒷골목 건물에 스프레이로 낙서그림을 그리던 클럽 DJ가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의 예술가로 추앙받고,화장실 변기를 전시장에 갖다 놓은 예술가가 '신'으로 평가받는 곳,'섹스 앤드 더 시티'로 대변되는 멋쟁이 여자들이 활보하는 예술의 도시….

미국 도시계획학자 엘리자베스 커리드는 《세계의 크리에이티브 공장 뉴욕》에서 뉴욕이 왜 창의적인 예술가들의 집결지가 됐으며 뉴욕의 문화예술 산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깊이있게 파헤친다.

그는 '크리에이티브 뉴욕'의 출발을 1850년대 출판업에서 찾는다. 신문과 잡지,문학지가 활발하게 출간되고 뉴욕 작가들이 그리니치 빌리지로 몰려들면서 세계적인 시각과 논점을 갖추게 된다. 이후 의류제조업이 활기를 띠고 패션잡지 창간과 함께 패션디자인 산업의 중심지가 되고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이어 재즈 음악가들이 속속 합류한다. 여기에 추상표현주의와 네오다다이즘,팝아트 등 미술 작가들과 주요 갤러리가 몰리면서 뉴욕은 현대 미술의 산실로 입지를 굳힌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명성을 확보한 것은 1980년대 이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예술가들이 그들의 창의성을 '팔기' 시작하면서 크리에이티브 산업 시대가 열리고,문화경제학의 메커니즘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지리적 밀집성'이다. 첼시에서 로어 이스트 사이드,미트 패킹,웨스트 빌리지에 이르는 예술 공동체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 안에 밀집해 있다. 서울의 서초구와 동작구를 합친 크기의 구역이 '크리에이티브 공장'인 셈이다.

행동반경이 일치하는 이러한 현상은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했다. 이것이 곧 '공생 관계'다. 그들은 같은 술집에서 어울리고 같은 갤러리로 몰려다니며 애프터 파티에서 친분을 쌓고 인맥을 넓힌다. 벽에 낙서하듯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클럽 DJ가 되고 패션 디자이너가 갤러리에서 일하게 되는 식이다.

뉴요커들의 이러한 '소셜 라이프'는 무명의 예술가를 발탁하는 창구이자 새로운 산업을 일궈내는 기회의 문이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면서 뉴욕의 창의적인 예술가들은 더 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저자는 뒷골목 아티스트들이 이끄는 뉴욕의 예술경제학을 이렇게 요약한다. "창의성이 기회를 만나는 순간,산업으로 폭발한다. " 이 원리는 글로벌 트렌드를 창출하고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