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시간 이상 좌복(방석)에 앉아 참선하는 기존 선원과 달리 걸으면서 참선하는 선원이 개설된다. 전국을 도보로 순례하며 생명평화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설파했던 도법 스님(60 ·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은 15일 "올 겨울 안거에 즈음해 지리산에 '움직이는 선원'을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간화선을 위주로 한 곳에서 머물며 수행하는 기존 선원들과 달리 역사적 현장의 길을 걸으며 수행자의 삶과 역할에 대해 치열하게 대화하고 토론하는 수행의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선원'은 침묵 속에 걸으며 참선하는 행선(行禪)과 각자 수행을 통해 얻은 바를 토론과 대화로 점검하는 탁마(琢磨)가 핵심이다. 따라서 '움직이는 선원' 참여자는 올 겨울 90~100일 동안 지리산 800리를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말없이 걷게 된다. 전통 선원에서 50분 수행하고 10분간 쉬는 것과 달리 45분간 걷고 15분간 쉴 예정이며 행선 출발 전 · 후에는 생명평화를 서원하는 100대 절 명상을 하게 된다.

특히 1주일에 한 번씩 수행 내용을 놓고 치열하게 대화 · 토론하는 탁마 수행은 기존 선원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점검'의 대안으로 주목된다. 보름마다 현대적 형식의 포살(계율을 잘 지켰는지 함께 모여 반성하는 자리)을 하고,초기경전과 '금강경''임제록' 등 조사어록을 교재로 '움직이는 안거'를 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라고 도법 스님은 전했다.

도법 스님은 "전통 선원의 형식만 남고 내용(깨달음과 실천)은 사라져버린 지금,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활발발(活潑潑)하게 움직이는 선원이 필요하다"며 "기존의 조용하고 안정된 수행도량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탐진치(貪嗔痴)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중생들의 삶의 현장이 수행도량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14~18일 남원 실상사 등에서 열기로 한 '정법불교를 모색하는 지리산 야단법석'은 이를 위한 준비 모임이다.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눈으로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선불교,현대불교까지 관통하는 불교관과 수행론을 정립하자는 것.

'움직이는 선원'의 조실이자 선(禪)과 교(敎 · 경전)를 겸수한 무비 스님(전 조계종 교육원장)을 비롯해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혜국 스님,인도 · 티베트 등에서 치열하게 수행한 향봉 스님,도법 스님의 강의와 토론으로 진행되는 '열린 법석(法席)'을 통해 불교계의 각종 문제점을 낱낱이 털어놓고 대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특히 법석마다 두 시간 이상의 난상토론을 벌이도록 해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지리산 야단법석'과 '움직이는 선원'의 준비와 운영에는 지리산권 사찰인 화엄사,쌍계사,대원사,벽송사,실상사가 우선 동참하며 구례 · 남원 · 함양 · 산청 · 하동 사암연합회와 연대해 동참 사찰을 확대할 계획.댐과 케이블카 건설 등으로 위기에 놓인 지리산을 보호하고 성지화하는 운동도 함께 벌일 계획이다. 도법 스님은 "걸으며 수행하는 '움직이는 선원'을 불교나 지리산에만 국한하지 않고 모든 종교,모든 지역에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할 수 있는 수행프로그램으로 대중화시키면 좋겠다"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