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등장한 '국진이 빵'은 초등학생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 학교 급식에도 많이 나갔다.
이 빵의 주인공은 강호동과 유재석이 예능계를 양분하기 전 오랜 기간 1인 독주 체제를 이어갔다.
"여보세요?", "어라?", "밤새지 마란 말이야" 등의 유행어를 히트시킨 그는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 시트콤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며 사랑받았다.
그렇게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그가 이혼 후 사라졌다가 2007년 9월 돌아왔다.
하지만 초반에는 복귀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떠나 있던 3년간 바뀌어 버린 예능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좀 더뎠을 뿐 그는 서서히 '회복'돼 갔고, 지난해 말 '2008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인기상을 받으며 재기의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이제 워밍업을 완전히 끝마친 모습이다.
"돌아오니 편안하네요.대학 졸업 직후 방송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이곳에 오면 편해요.여기저기 다녀본 결과 제일 아는 사람도 많고(웃음), 카메라도 낯설지 않고요.그런 것을 보면 '아, 내가 여기에 오래 있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경기 고양시 일산 MBC 제작센터에서 만난 김국진(44)은 이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복귀한 지도 어느덧 꽤 됐는데 이제는 기분 좋게 방송하려고 하고 있습니다.제가 원래 좀 신중하고 천천히 가는 편이어서 그동안은 흐름을 파악하느라 시간이 걸렸어요.뭔가를 억지로 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흐름을 지켜보다 기회가 걸리면 탁 치고 들어가는 스타일인데 이제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김국진은 현재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 MBC TV '황금어장-라디오스타'와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 SBS TV '스타 주니어 쇼-붕어빵' 등 4개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이다.
일각에서는 성급하게 '제2의 전성기'를 운운하기도 한다.
"예전만큼 하려면 앞으로 정말 더 열심히 해야죠. 전성기는 아니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한편으로 고맙기도 해요.어쨌든 이제는 제가 방송하는 것이 불안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뜻이니까요.하지만 진짜 전성기를 다시 맞으려면 아직 멀었고 더 잘해서 훨씬 더 재미있게 해 드려야죠."
그는 겸손했고 신중했지만 은연중에 단단한 자존심을 내비쳤다.
동료가 '눈물이 없는 연예인'이라며 혀를 내두르는 김국진은 실제로 연예계에서 자존심이 강하기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정상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이혼 후 연예계를 떠났고,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프로골프 테스트에 11번 도전한 것도 자존심 때문이었다.
"방송을 떠난 동안은 예능 프로그램을 전혀 안 봤어요.또 혼자서 지냈기 때문에 복귀해서 감을 다시 잡는 데 좀 걸렸습니다.처음 3개월 정도는 그저 눈만 뜬 마네킹과 같은 수준이었죠. 지금 '행복하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하지만 편안합니다.편하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살면서 불편한 상황이 아주 많잖아요."
김국진은 남들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하기 십상인 작고 왜소한 체구, 느리고 어눌한 말투를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켜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예능계는 독설과 무례함이 웃음의 코드로 자리잡았지만 김국진은 예전과 같은 스타일로 예능계의 공격적인 흐름 속에서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순해야 하지 않겠어요? 또 전 계속 순할 수밖에 없어요.무례하게는 못하겠거든요.하지만 지금의 예능 풍토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좋게 생각하면 언어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거든요.이게 아닌 것 같으면 자동으로 사라지게 됩니다.누가 인위적으로 정화하지 않아도 방송은 자연스럽게 제 길을 찾아가게 된다고 생각해요.음악도 유행이 있듯 말이죠. 시청자들의 비판이 얼마나 예리하고 날카로운데요."
그는 자신의 개그 스타일이 '선을 지키는 개그'라고 이야기했다.
출연진이 자신의 모든 것을 까보이는 '남자의 자격'에서도 김국진만은 솜씨좋게 치고 빠지는 기술을 발휘하는 것도 선을 지키려하기 때문이라는 것.
"전 성격이 온화하지만은 않아요.다만 선을 지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오버한다'는 말은 선을 넘어서면 듣게 되죠. 어떤 방송을 하든 선 안에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무례해 보이지 않는 것일 겁니다.또 저는 저의 모든 것을 다 보여 드릴 생각은 없어요.리얼리티가 대세인 시대이지만 저는 안 보일 부분은 안 보여 드릴 생각이에요.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스타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제 스타일이 그렇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목표가 뭐냐고 물었다.
"찰리 채플린이 대표작을 묻는 말에 '차기작'이라고 답했는데 그 말에 아주 공감합니다.달리기 시합도 아니고, 목표를 뭐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네요.그냥 앞으로 나다운 것을 더 잘할 생각이에요."
감리교, 손 교수 의견청취 후 '혐의없음' 최종 판단 "예수는 보살"이라는 발언으로 '이단(異端)' 논란에 휩싸였던 서울기독대 손원영 교수가 소속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에서 이단과 무관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15일 개신교계에 따르면 기감 이단대책위원회(이대위)는 지난 11일 손 교수를 불러 그간 제기된 이단성 논란에 대한 의견 청취를 하고, 최종적으로 이단 혐의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손 교수는 2018년 한 불교 법회 강연에서 "예수님은 육바라밀(六波羅蜜·6가지 수행덕목)을 실천한 보살"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불자들의 언어로 예수를 나타내는 말을 찾다 '보살'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이대위 측은 손 교수가 이단과 무관하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신학적인 용어와 목회 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 간 차이가 있으니 주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손 교수는 "주의하겠다. 목사님, 교인분들에게 심려를 끼쳤다면 죄송하다"는 뜻을 밝혔다. 손 교수는 그간 개신교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2016년 한 개신교인이 경북 김천의 개운사 법당에 들어가 불상을 훼손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개신교계를 대신해 사과하는 글을 올리고, 불당 복구를 위한 모금에 나섰다. 이 일로 재직했던 학교에서 신앙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결국 파면이라는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손 교수는 법적 소송 끝에 부당 해고 판단을 받아냈으나, "예수는 보살"이라는 발언을 문제 삼은 학교 측이 재임용 불가로 맞서며 시련이 지속했다. 그는 학내 연구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장기 복직 투쟁을 벌인 끝에 올해 1학기 강단으로 복귀했다. 손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에 "모든
분침이 따라잡지 못한 시침마음과 따로 노는 몸체형을 기억하는 데 실패한 티셔츠매듭이 버린 신발 끈단어가 놓친 시추신이 잊은 안부그림자가 두고 온 사람아무도 더듬지 않는 자취한 명의 우리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아침달) 中모래알이 스르륵 손가락 사이를 흘러 내려갑니다. 손이 모래알을 놓쳤다기보다는, 모래알이 손에서 달아난 것 같습니다. 이처럼 손안에 있으면서 이내 그 손을 놓치고 마는 무언가를 상상해 봅니다. 갖가지 존재들의 고유한 형태와 움직임, 그리고 자그마한 실패를요. 때로는 그러한 상상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그 어떤 어긋남이든, 온전히 나만의 책임으로 여기지 않아도 좋다고요. 어느덧 작아진 티셔츠를 앞에 두고 생각해 봅니다. 체형을 기억하는 데 실패했구나, 라고요.김건홍 시인(2020 한경 신춘문예 당선자)
“모든 기쁨이 아니라 ‘거의’ 모든 기쁨, 모든 슬픔이 아니라 ‘거의’ 모든 슬픔이 시가 돼요. 세상일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 100% 완전한 건 없잖아요. 모두에 속하지 않은 일부, 작은 목소리들을 시로 담았습니다.”두 번째 시집 <거의 모든 기쁨>을 출간한 이소연 시인(사진)은 15일 서울 도봉동 김근태기념도서관에서 한 인터뷰에서 “이번 시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거의’라는 단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김근태기념도서관 상주 작가로 선발돼 이곳에서 시를 쓰고 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시집 제목은 수록 시 ‘부분 일식’ 가운데 “생일이 끝났을 땐/거의 모든 기쁨이 사라졌다”는 구절에서 따왔다. 시인은 지난해 가을 일어난 부분 일식을 보면서 “사라졌지만 또 남아있는, 변화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소연 시인은 앞서 2020년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를 출간했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을 바라보며 폭력적 상황에 처한 여성의 목소리를 시로 기록했다.그는 시 쓰기의 동력을 ‘분노’에서 찾는다. 기후위기, 성차별 등 “나의 분노를 가장 품격 있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를 쓴다. 그에게 분노란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이다. “싸움은 상대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해요. 애정이 없다면 그냥 포기하고 말죠.”그렇기에 무엇이 폭력인지, 폭력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첫 시집에서 그는 ‘철’ 연작을 통해 ‘철’을 폭력의 상징으로 그렸다.최근에는 &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