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에도 'TPO'(Time,Place,Ocassion)음악 시대가 열렸다.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옷을 달리 입는다는 패션계 트렌드가 가요계로 확산된 것.미디어 성격에 어울리도록 소비자들이 자신의 개성을 카멜레온처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9일 음악포털 도시락(www.dosirak.com)이 상반기 최고의 인기곡을 집계한 결과 소녀시대(사진) 'Gee'가 1위로 밝혀졌다. 슈퍼주니어 '쏘리쏘리'는 2위,빅뱅과 2NE1의 '롤리팝'은 3위로 나타나는 등 빠른 템포의 댄스곡들이 최상위권을 싹쓸이했다.

그러나 전화연결음과 배경음악에서는 발라드가 강세였다. 도시락에서 상반기 전화연결음 1위에 오른 곡은 이승철의 '그런사람 또 없습니다'였다. 이승철의 '듣고 있나요'도 7위에 올라 전화연결음 부문에서는 이승철의 발라드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화제의 방송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제곡으로 사용됐던 SS501의 '내머리가 나빠서'는 2위,케이윌의 '러브 119'와 바비킴의 '사랑 그놈'도 '톱10'에 올랐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에서는 지난달 힙합가수 아웃사이더의 속사포 랩 '외톨이'가 정상에 섰다. 싸이월드 관계자는 "랩이 1위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개인적인 고충을 말로 쏟아내려는 네티즌들의 욕구가 반영된 듯싶다"고 말했다.

이처럼 음악포털과 휴대폰 인기음원,개인 미니홈피 배경음악 등이 다른 이유는 매체별 특성에 어울리게 개성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듣는 음악과 타인에게 들려주려는 음악 간에 괴리가 크다. 자신이 직접 즐기는 음악포털 다운로드 순위에서 댄스곡들이 상위권을 휩쓴 것은 유행에 편승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동시대의 일원이란 바람을 투영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남에게 들려주기 위한 전화연결음과 배경음악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발라드곡들을 선택한다. '내 머리가 나빠서'는 자신을 자학적으로 표현해 타인의 동정을 구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했다. '러브 119'는 너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갈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비쿼터스 음악환경이 구축되면서 네티즌들이 좋아하는 음악들도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KT뮤직 이창학 상무는 "종전에는 음악을 라디오와 TV 등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받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인터넷과 휴대폰)들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반이 인기를 얻는 것도 제작사와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CD 등을 쉽게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 서정민갑씨는 "올 들어 아이돌그룹과 경쟁하려는 가수들이 비교적 수준높고 다양한 곡들을 내놨다"며 "이 같은 현상은 음악계에 활기를 불러올 수 있는 청신호"라고 내다봤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