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공채 시험에 합격하긴 했으나 영 신통치 않아 결국 지하철 잡상인으로 나선 청년이 있다. 사생아를 임신하여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처자가 있다. 당신이라면 "지금 내 처지가 이렇소"라고 당당할 수 있겠는가. 비슷한 처지인 사람을 만났을 때 동족혐오에 몸서리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올해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날아라,잡상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구질구질한 상황에서 산뜻하게 살아간다. 사생아로 태어나 개그맨의 꿈을 접고 지하철 잡상인이 된 철이의 판매실적은 영 부진하다. 애인을 떠나보낸 뒤 청각장애인 수지의 배는 점점 불러온다. 수지의 동생 효철은 말하지도,듣지도,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사랑하며 '이번 칸에서 망했더라도 기죽을 필요 없어.배에 힘주고,어깨 펴고,다음 칸으로 이동!'이라는 자세로 험한 세상을 헤쳐나간다.

이에 대해 작가 우승미씨는 "이들의 비결은 동정심과 수치심"이라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등장인물들은 성인군자도 아니고 '쿨한' 존재도 아니다. 우씨는 "수치심을 통해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동정심을 통해 같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법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효철의 '신체 건강한 미모의' 약혼녀는 "사랑하는 게 아니라 동정하는 거 아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일격을 가한다. "동정이 나쁜 거야? 누구에게나 삶은 고달픈 거잖아.동정이든 연민이든 사랑이든 이름만 다를 뿐 결국 다 같은 거야.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위에 설 수 없어.우리는 모두 다 아래에 있으니까. "

수치심도 마찬가지.작가는 작중인물의 입을 빌어 "자기를 낮추어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 있고,자기에게 기대는 사람을 받아 줄 수 있게 되는 거,이게 바로 수치심의 긍정적인 면이야"라고 말한다. 자신이 부끄럽고 나약한 존재임을 알고 타인 또한 나와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야 우리는 서로 보듬어 가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작가는 "부족한 사람들이야말로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없이 유년기를 보냈던 철이가 수지의 사생아에게 아버지가 되어주는 게 일례다.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진다고 반드시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늘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요. "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