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여자들의 꿈과 현실을 솔직하고 유쾌하게 그린 2편의 창작극이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스물아홉 세 미혼 친구들의 결혼 해프닝을 다룬 뮤지컬 《웨딩펀드》와 전업주부,이혼녀인 서른 아홉의 세 친구가 등장하는 연극 《울다가 웃으면》은 각각 20대와 30대의 끝자락에서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스토리와 솔직한 심리묘사로 여성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결혼과 자아실현 사이에서 갈등하고,끝없이 쏟아지는 인생의 숙제 앞에서 좌절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두 작품 속 주인공들은 마치 서로의 10년 후와 10년 전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서른살,오면 안될 것 같은 마흔살을 코앞에 마주한 그녀들의 이야기다.

◆얼떨결에 '취집'가게 생겼네,뮤지컬 '웨딩펀드'

제일 먼저 결혼하는 친구에게 적금을 몰아주기로 하고 10년간 3800만원을 모은 고교 단짝 친구 세연,정은,지희.그런데 만화가인 정은과 학원강사인 세연을 제치고 별 직업도 없이 지내던 지희가 선본 지 한 달도 안돼서 결혼하겠다고 폭탄 선언을 하면서 이들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저보다 못났다고 생각한 친구가 먼저 결혼하는 것도 배아픈데 게다가 축의금 3800만원까지 빼앗길(?) 생각을 하니 정은과 세연은 잠도 오지 않는다. 이들은 어떻게든 지희보다 먼저 결혼하려는 계획을 세우면서 평소 알고 지내던 남자들을 하나 둘 만나기 시작하는데….

결혼은 자기에게 맞는 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군가에게 어울릴 수 있도록 스스로를 준비하고 다듬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결혼이 순수함과 신성함을 잃어버리고 조건과 환경에 지배당하면서 겪는 해프닝을 보면 '그럼 나는?'하며 한번쯤 되돌아보게 된다.

대학로에서 입소문 난 연극 '오월엔 결혼할거야'를 뮤지컬로 옮긴 '웨딩펀드'는 얼떨결에 결혼이 지상 최대 과제가 돼버린 여자들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코믹하게 표현한다. 유나영,박혜나,김민주가 주연을 맡고 청일점 배우 전병욱이 1인 다역의 멀티맨으로 등장한다. 7월9일~8월16일까지 대학로 문화공간 1관.

◆"남편이 뭘 알아" 연극 '울다가 웃으면'

스물 두살에 결혼해 시할머니,시어머니,딸 셋을 돌보는 서른 아홉의 재연은 오랜만에 만난 동창생 소영과 현수에게 돼지고기를 싫어하는 시댁 분위기 때문에 자신도 돼지고기를 못 먹는다며 신세 한탄을 하다가 울먹거린다. "그냥 좀 알아주면 안되니,꼭 말로 해야 아나? 자기 마누라가 쇠고기를 좋아하는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지,신김치를 좋아하는지 겉절이를 좋아하는지."

연극 《울다가 웃으면》은 결혼과 육아에 파묻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고 사는 30대 후반 여성들의 속마음을 '속깊은 수다'로 끄집어낸다. 결혼 후 가족을 챙기느라 투명인간이 돼 버린 재연이나 가족보다 일을 우선시했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현수,경제적 능력은 없지만 연애하는 능력은 뛰어난 남편과 결혼해 생계를 책임지는 소정까지.30대 후반 여자들의 결혼과 꿈,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었다.

극작과 연출까지 책임지고 있는 배우 우현주(39)는 "29살이나 49살에는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품지만 39살은 다르다"며 "인생의 모습과 생각이 개인별로 매우 큰 차이를 보이면서 제2의 사춘기를 보내는 시점"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2년여 만에 다시 연극 무대에 선다. 극단 맨씨어터를 만들고 2007년 첫 선을 보인 라이선스 연극 '썸걸즈'가 흥행에 성공했으나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한동안 쉬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연극에는 그의 경험이 녹아있다. 특히 같은 병실을 쓰는 암환자와 임신중독증 환자의 이야기를 그린 두 번째 에피소드에는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여자들의 끈끈한 소통을 담았다. 8월30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