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이끈 이건무 문화재청장
[월요인터뷰] 이건무 문화재청장‥스토리텔링의 힘…'단종 哀史'가 유네스코 실사단 울렸죠

조선왕릉 40기 전체가 지난달 27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국내 문화유산으로는 여덟 번째,자연유산을 포함하면 아홉 번째 세계유산이다. 한반도라는 작은 땅,그마저도 분단된 남한에서 이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분명 쾌거다. 숱한 어려움을 딛고 '등재 프로젝트'를 이끌며 세비야에 다녀온 이건무 문화재청장(62)을 지난 3일 오후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만나 치열했던 등재 경쟁과 세계 각국의 문화외교전,향후 세계유산 등재 계획과 전망 등을 들어봤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됐을 때 기분이 어떻던가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지요. 조선왕릉의 탁월한 가치와 완전성으로 인해 등재를 확신하고 있었지만 막상 의장이 등재됐음을 선언하자 '아,드디어 우리 모두가 해냈구나!'라는 성취감에 휩싸였지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회 위원들과 실사 때 고생한 문화재청 직원들,외교통상부와 유네스코 관계자 등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한뜻으로 힘을 모은 덕분입니다. "

▶벌써 조선왕릉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많이 커졌죠.

"조선왕릉이 등재된 이후 1주일 만에 관람객이 평균 47.5%나 늘었어요. 구리의 동구릉은 지난달 27일 관람객이 무려 146%나 늘었죠.사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 세계유산 등재입니다. 제주도의 경우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고 1년 만에 관광객이 20%나 늘었고,도민의 90% 이상이 제주 특별자치도가 된 후 최고의 치적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꼽았답니다. 세계유산 등재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문화관광 자원입니다. 세계유산이 되면 세계적인 유명 매체를 통해 알려질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발행 지도와 잡지,홈페이지 등에도 소개되므로 관광 효과가 커질 수밖에 없죠."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번 회의에서 중국,캄보디아 등 각국이 세계유산 등재와 등재 유지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문화외교의 전쟁터 같다고나 할까요. 중국은 '등재 보류' 판정을 받은 우타이산(오대산)을 등재시키려고 대규모 인원을 현지에 파견해 대대적인 로비활동을 벌였고,'프레아 비헤아르 힌두사원'을 두고 태국과 무력충돌까지 벌였던 캄보디아에선 부총리가 와서 외교전을 펼쳤죠."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에서 결정적 고비는 언제였습니까.

"가장 결정적 고비는 지난해 9월 ICOMOS의 전문가인 중국의 왕리준 선생이 현지실사단으로 왔을 때였죠.왕 선생은 중국 황릉을 연구한 젊은 사람인데 중국의 큰 능과 비교하며 조선왕릉을 폄하하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었거든요. 게다가 짧은 실사 일정을 감안해 비슷한 왕릉은 생략하고 대표적인 왕릉들만 조사하자는 제안에 왕 선생은 밤이 늦더라도 40기 전체를 모두 살펴보겠다고 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죠.그런데 역시 해당 분야를 전공한 학자라서 이해가 빠르고 조선왕릉의 가치를 금방 인정하더군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지요. 왕 선생은 특히 단종 애사(哀史)를 비롯한 왕릉 관련 이야기에 매우 공감했는데 그게 실사 평가 때 좋은 점수를 받게 된 것 같습니다. "

▶그만큼 스토리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조선왕릉은 영월 장릉을 제외하고는 창덕궁과 종묘를 중심으로 40㎞ 이내의 서울과 경기도에 있습니다. 따라서 창덕궁,종묘,조선왕릉을 잇는 탐방 코스와 여기에 맞는 능별 스토리텔링을 개발해 연계할 계획입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에서 '왕실의 삶과 죽음의 공간을 체험한다'는 주제로 고궁과 왕릉을 연계한 세계유산 투어프로그램을 개발 중입니다. 또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문화관광 상품도 다양하게 개발할 겁니다. 예를 들면 고궁 한두 곳과 여주 영릉(세종대왕릉),신륵사,여주 세계도자예술관,명성황후 생가를 패키지로 묶거나 고궁 한두 곳과 화성 융건릉,용주사,수원 화성을 연계하는 것이죠.여기에 '대장금' 스타일의 전통 궁중음식과 관련한 문화상품까지 더하면 금상첨화가 되겠지요. "

▶이미 등재된 세계유산 외에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문화 · 자연유산이 많습니다.

"한국은 현재 모두 9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고구려벽화고분군까지 더하면 10건,중국이 관리하고 있는 고구려벽화고분군까지 포함하면 11건의 세계유산이 우리 민족의 유산인 셈이죠.여기에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을 묶어 '한국의 역사마을'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토록 추진 중인데 지난 1월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냈고,올가을 실사를 거쳐 내년에 등재 여부가 결정됩니다. 또한 최근에는 남한산성과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을 비롯한 문화유산 7건과 자연유산 1건(창녕 우포늪) 등 8건을 세계유산 잠정 목록으로 등재키로 결정했습니다. "

▶세계유산 등재의 트렌드 변화도 잘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가 최근 선사유적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울산 대곡천 암각화군에 선사유적군을 포함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어요. 또 근대 문화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려는 움직임도 커져서 우리도 후보를 찾아봐야 합니다. "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이 정도면 세계유산이 많은 것 아닙니까.

"남북한을 합치면 10건의 세계유산을 가지고 있으니까 많은 편이죠.이탈리아가 43건,스페인 41건,중국이 37건을 보유하고 있는데 중국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에 땅도 넓지 않습니까. 아직 세계유산이 없는 나라도 많고요. 돈만 많다고 문화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유산 등재도 국력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렇게 볼 때 세계유산 등재는 문화선진국 진입의 증거라 할 만해요. 우리는 통일만 되면 등재할 세계유산이 더 많습니다. 금강산은 당장 세계자연유산감이고,그 안의 사찰들을 포함하면 복합유산 등재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

▶한국의 문화 및 자연유산에 대한 해외 전문가의 관심과 평가는 어느 정도입니까.

"동양의 신비로움에 대한 관심이 큰 데다 조선왕릉은 물론 석굴암,해인사 장경판전 등의 특이하고 놀라운 과학적 구도에 서양 전문가들이 경탄하고 있어요. 사실 중국이나 베트남에도 왕릉이 있는데 조선왕릉을 세계유산에 등재한 것은 한국문화의 독자성과 특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유네스코와 자문기구인 ICOMOS,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전문가들 대부분이 한국의 문화유산,자연유산을 꼭 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들을 초청해 국제 세미나를 여는 등 우리의 우군으로 만들어야죠."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계곡이 세계유산에서 사상 처음으로 제외됐는데요. 등재 못지않게 보존관리가 중요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베계곡은 세계유산이라도 관리가 부실하면 언제든 등재가 취소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예요. 조선왕릉 40기의 세계유산 등재는 단체경기의 금메달처럼 큰 영광인 동시에 40곳 모두 잘 관리해야 하므로 큰 부담이기도 해요. 유네스코의 권고대로 일부 원형이 훼손된 태릉과 의릉,서삼릉 등을 우선 복원하는 한편 조선왕릉의 종합적인 보존관리 및 활용 계획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조선왕릉은 주로 서울 · 경기도에 있는 까닭에 주변의 각종 개발압력에 시달리고 있는데,완충지역을 굳건하게 잘 지키는 것이 보존의 관건입니다.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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