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는 풍채가 좋고 성품도 소탈한 데다 그림 솜씨까지 출중해 '화선(畵仙)'의 칭호를 받았다. 그런 그도 술을 좋아했고 취중에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는 '단원' 말고도 '취화사(술취한 환쟁이)''첩취옹(곧 취하는 늙은이)'이라는 호를 일부러 지어 썼다. 술이 그만큼 그의 예술적 상상력을 북돋워준 것이다.

19세기 화가 장승업도 으뜸가는 주당이었다. 고종이 궁중에 방을 마련해주고 10폭짜리 병풍을 여러 첩 그리게 했는 데 술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몇번이나 '탈출'과 '감금'을 반복했다. 그와 친한 민영환이 온갖 꾀를 써서 붙잡아뒀지만 끝내 그 병풍은 완성되지 못했다. 이는 예술보다 술에 굴복한 경우다.

황진이의 무덤에 술을 바쳤다가 파면된 선조 때 시인 임제가 주막집 주모와 하룻밤을 보내다 주모 남편에게 발각돼 위기에 처하자 '어젯밤 장안에서 술에 취해 여기 오니/ 복숭아꽃 한 가지 아름답게 피었네/ 그대 어찌하며 꽃을 번화한 땅에 심었나/ 심은 자가 그른가 꺾은 자가 그른가'라는 시를 써서 오히려 술대접까지 받았다는 일화도 재미있다.

이처럼 술은 풍미와 흥취와 주사를 동시에 부르는 묘약이다. 《술-한국의 술문화 1,2》는 우리나라 술의 내력과 술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1700쪽이 넘는 분량에 담아낸 역작.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77)이 썼다. 1998년에도 3권짜리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를 펴낸 그는 특유의 끈기와 성실성으로 10년간 술에 관련한 자료를 조사했다. 그림과 사진 자료도 1200점이나 찾아 수록했다.

이 책에는 술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주의 종류와 특징,술의 효용성,술을 파는 상점의 모습,술과 관련된 풍속과 주법,술 권하는 문화,음악과 문학,술을 담는 용기,술꾼들에 얽힌 일화,술 관련 속담 · 고사성어까지 망라돼 있다.

그 중에서도 술 취한 자의 행태를 유형별로 나눠놓은 부분이 흥미롭다. 술에 취해 감흥에 젖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잠에 빠져드는 사람,갖가지 실례를 저지르거나 정신을 아예 놓아버리는 사람 등 글과 그림으로 표현된 옛 사람들의 모습이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풍류는 사라지고 술만 남은 요즘 세태가 안타까워요. 우의를 돈독히 하거나 예술적인 자극을 받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과 무작정 취하려고 술을 마시는 것은 다릅니다. 특히 폭탄주는 청산해야 할 문화죠.과음해서 남들에게도 폐를 끼치고 자기 건강도 망칩니다. 선조들의 진정한 '풍류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예요. "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