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통계' 출간

승객이 이동한 100억㎞당 사망자는 철도의 경우 9명이고 비행기는 3명이다.

그렇다고 비행기가 더 안전할까.

기준을 거리가 아닌 시간으로 바꿔 놓고 보자. 승객이 타고 보낸 1억 시간당 사망자는 철도 7명, 비행기 24명이다.

이처럼 숫자는 사람의 눈과 머릿속에서 장난을 친다.

독일어협회 회장인 발터 크래머 독일 도르트문트공대 통계학과 교수는 '벌거벗은 통계'(이순 펴냄)에서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통계의 함정들을 해부한다.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다"고 쓴 성서는 "므두셀라는 900세까지 살았다"는 표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짜로 그랬구나"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

정교한 숫자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권위를 갖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에서는 센트럴파크에서 살해당한 피해자보다 침실과 부엌에서 희생된 피해자가 더 많다.

그렇다고 "밤에는 집보다 센트럴파크에서 자는 게 안전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집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센트럴파크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서 나온 통계다.

해마다 정치인들의 낯빛을 변하게 하는 국민총생산도 이상한 숫자다.

'한 나라의 모든 경제단위들의 총생산'이라는 정의가 무색하게, 정비소에 가지 않고 직접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옆집 아이에게 1천원을 주고 심부름을 시키는 수많은 경제 행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수치다.

저자는 현란한 숫자 놀음에 속아 넘어가지 말라고 주문한다.

뉴스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각 매체가 추린 일부의 사실에 불과하고, 통계는 숫자를 특정 방향으로 몰아넣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통계의 장난이 국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거나, 단순히 편리한 보도를 위해 언론이 꾸며낸 것이거나 관계없이 역시나 필요한 것은 개개인의 비판적인 시각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변조된 숫자는 거의 언제나 거짓말이나 엉터리 그림보다 알아차리기 쉽다.

우리의 협력 없이는 누구도 우리를 장기적으로 이런 속임수로 조롱할 수 없다.

"
이 책은 독일에서 1991년 출간, 2008년에는 증보판도 나왔으며 국내에서는 이번에 처음 번역 출간됐다.

염정용 옮김. 248쪽. 1만1천원.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