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리 갈대밭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가슴속에 각인된 가을 신성리 갈대밭 풍경의 서정을 대신할 그 무엇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예정에 없던 시간과 장소에서 뜻밖의 깊은 울림에 몸을 떨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이곳 서천땅에서 6년이나 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한 정경임씨(60)에 대한 신뢰도 한몫했다.

녹색 짙은 신성리 갈대밭

6월 신성리 갈대밭은 짙은 초록으로 생기가 넘친다. 둑 이쪽에 넓게 펼쳐진 논,둑을 따라 이어진 무성한 갈대밭과 새파란 금강 물줄기,그리고 강 너머의 높지 않은 산줄기 풍경이 기막히게 어울린다. 그 어느 비결(秘訣)에 꼽아놓은 10승지지(十勝之地) 중 한 곳에 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푸근하다. 때마침 갈대밭 사잇길로 산책하는 연인인 듯한 젊은 남녀의 표정이 그렇게 환할 수 없다. 갈대밭 한쪽 원두막에서는 두 중년 여인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고,짧은 다리 너머의 원두막 앞에 흔들리는 그네는 또 다른 연인 차지다. 갈대밭의 초록은 연인이 있고 친구가 함께 해 더 환하고 넉넉하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신성리 갈대밭은 엄청 넓다. 넓게는 폭 200m나 되는 곳이 1㎞ 넘게 뻗어 있다. 우리나라 4대 갈대밭 중 하나로 꼽힌다. 흥행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영화의 배경은 가을이지만 초록이 짙은 여름풍경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새봄 갈대밭에 불을 놓을 때만 제외하면 사계절 각기 다른 멋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제일 좋을 때는 가을이다. 정경임 해설사는 10월 말이나 11월 초순을 꼽는다. 그는 "1.2㎞의 뚝방길에 새하얀 억새꽃이 피는 시기의 해질무렵이 가장 아름답다"며 "그 시기의 갈대밭 풍경을 마주하면 왠지 '센치'해진다"고 했다. 그때쯤 연인들을 위한 '달빛사냥축제'도 기획하고 있다. 1만원이면 충분한 무박 프로그램을 만들어 억새와 갈대숲 위로 쏟아지는 달빛 풍경을 즐기고 우리밀국수와 '한산 소곡주'도 맛보며 사랑을 키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내손으로 빚어보는 앉은뱅이 술

그래, 서천에서 한산 소곡주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산 소곡주는 전통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술로 알려져 있다. 백제왕실에서 즐겨 음용하던 술이었다고 한다. 1800년께 주류성 아랫마을인 호암리에서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9년 고(故) 김영신씨가 충남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받았다. 그리고 며느리인 우희열씨가 1997년 충남무형문화재 제3호로 승계받아 아들 나장연씨(한산소곡주 대표)와 함께 소곡주를 빚고 있다. 한산소곡주 생산량은 연간 130㎘.한산소곡주 이외의 가양주까지 합치면 400㎘ 정도 된다고 한다.

한산소곡주는 100일 동안 숙성시켜 만든 전통곡주다. 보통 음력 10월 셋째주쯤 빚는다. 우리 설에 맞춰 맛있게 숙성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찹쌀과 누룩을 주원료로 들국화,메주콩,생강,엿기름,홍고추 등을 쓴다. 연한 미색이 나고 단맛이 강하며 들국화에서 비롯된 그윽한 향이 일품인 술이다.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술맛이 달콤해 일단 술상 앞에 앉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취기가 올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동자북 마을에 가면 이 한산소곡주를 직접 빚어볼 수 있다. 동자북 마을은 백제 부흥운동에 참여한 동자들이 당나라 군대를 경계하며 북을 쳤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험장이 만들어졌고 저온저장창고도 곧 준공 예정이다. 소곡주 빚기 체험은 덧술 빚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체험객들이 빚은 덧술을 미리 준비한 밑술과 혼합해 들국화,메주콩,엿기름 같은 첨가물을 넣고 항아리에 쏟는다. 항아리는 체험객들이 소원을 적은 소원지를 꼰 새끼로 봉인해 숙성한다. 그리고 숙성된 술이 완성되면 택배로 보내주는 방식이다. 소곡주 빚기와 함께 모시잎 가루를 넣은 모시떡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떡메를 쳐 만든 모시떡을 안주 삼아 자신이 빚은 소곡주 몇 잔에 혹시 서천에 눌러앉게 되지는 않을까.

서천=글/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서울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서천분기점~서천 공주 간 고속도로~동서천나들목으로 내려서면 5분 거리에 한산모시관이 나온다. 한산모시관에서 부여 방향 700m 우측 신성리 갈대밭 쪽으로 가는 길 100m쯤에 한산소곡주 빚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동자북마을이 있다.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체험장이 완공됐고 저온저장실과 전시관은 8월께 준공 예정이다. 소곡주 빚기 체험 프로그램은 오는 7월18일부터 매 주말에 운영할 예정이다. 10월부터는 매일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곡주 빚기 체험은 서천문화원(041-953-0123)이 안내한다.

할매온정집(041-956-4860)이 아귀전문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탕의 국물맛이 묵직하다. 아귀찜은 인원수에 관계없이 무조건 10만원.아귀탕은 기본 2인부터 보통 3만원,특 3만8000원.서천수산물특화시장에 가면 싱싱한 회가 기다린다. 1층에서 횟감을 고르면 장금이(041-953-9762) 등 2층 식당에서 상차림을 해준다. 기본 상차림비는 1인당 3000원.탕과 밥이 추가되면 1인당 5000원.

서천식물예술원(041-951-1072),이하복 가옥(011-9072-3613),한산모시관(041-950-4431)도 둘러볼 만하다. 서천군청 문화관광과(061)950-4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