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0월24일 오전.피아트 린고토 공장의 확성기들이 두체(무솔리니)의 도착을 알렸다. 현장에는 2만5000여 명의 노동자가 운집해 있었다. 전투 구호와 가요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두체와 피아트 아넬리 회장이 연단에 올랐다. 무대 뒤에는 'FIAT'라는 글자가 거대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그 중앙에는 파시즘의 상징인 도끼가 우뚝 서 있었다. 아넬리가 환영사를 마치고 "두체 만세"를 선창했다. 곧이어 두체가 연설을 시작했다. '

기업과 정치 권력의 밀월 관계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이 행사의 배후엔 미국 포드의 이탈리아 시장 진입을 막아준 무솔리니에 대한 답례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훗날 아넬리가 회한에 젖어 '쓰디쓴 축배'였다고 술회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장밋빛'이었다.

《피아트와 파시즘》은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쓴 피아트의 정치사이자 기업사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성공한 대기업이라는 평가와 함께 현재의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도 공격적인 인수 합병을 멈추지 않는 이 회사를 소재로 파시즘 집권기에 '기업이 국가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분석했다.

저자는 영남대 사학과 교수.이탈리아 토리노대학에서 이탈리아와 서양현대사를 공부한 그의 경력이 책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았지만 종속되지 않았고 대공황과 세계 대전의 잇단 위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역량과 '뚝심'을 읽을 수 있다.

김홍조 편집위원 kiru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