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00년간 공주와 옹주는 모두 116명.공주는 왕비의 딸,옹주는 후궁의 딸을 말합니다. 지성과 미모를 갖추고 부귀영화를 다 누렸을 것 같은 이들의 실제 삶은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이들에 관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명호 부경대 교수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사료와 묘지명 등을 뒤져 역사 속에 가려졌던 이들의 삶을 복원했군요. 그 중에서도 파란만장하게 살다 간 7명의 얘기를 《조선공주실록》(역사의아침 펴냄)에 담아냈습니다.

영조의 딸인 화완 옹주 얘기부터 들어볼까요. 영조가 아끼던 화완 옹주는 정조의 최고 라이벌이었습니다. 오빠인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조카 세손을 아들처럼 아꼈지만 세손이 청년으로 자라면서 사이가 멀어졌고 자기 양자인 정후겸에게 애정을 쏟았다가 죽음을 앞둔 영조의 외면으로 고독해졌지요.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령했을 때는 정후겸의 기득권을 지키고자 왕위 계승을 방해했고,이 때문에 정조가 즉위한 뒤 강화도로 유배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문종의 딸인 경혜 공주는 계유정난에 휘말려 남편과 친동생인 단종을 잃었지요. 남편이 유배지에서 능지처참된 뒤에는 연좌제에 따라 노비의 신분으로 전락했고 결국 머리를 깎고 속세를 떠나야 했습니다.

국익을 위해 인질로 잡혀가야만 했던 의순 공주와 덕혜 옹주의 모습도 기구합니다. 의순 공주는 금림군 이개윤의 딸이었지만 효종이 청나라 섭정왕 도르곤의 배우자로 보내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양녀로 삼아 공주로 봉작한 경우입니다. 이름도 대의에 순종했다는 뜻이지요. 도르곤이 죽고 7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지만 오랑캐에게 더럽혀진 '환향녀(還鄕女 · 화냥년)'로 손가락질 받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은 더욱 가슴 아픕니다. 열네 살 때 도쿄로 '유학' 갔다가 대마도 번주와 정략결혼한 덕혜 옹주의 삶도 마찬가지죠.

왕의 딸이지만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못한 공주들의 사연.관련 자료가 너무 없어 온갖 주변 사료를 찾아 퍼즐처럼 꿰맞췄다는 저자의 '발품 노력'이 더욱 빛납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