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떴다┃김이은 지음┃민음사┃312쪽┃1만2000원

김이은씨(36)의 소설집 《코끼리가 떴다》에는 기괴하고 환상적인 상황과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현실이 촘촘하게 엮여져 있다.

표제작 <코끼리가 떴다>에서는 자식을 삼류대 법대에 보내느라 어깨뼈가 빠지도록 일했던 어머니와 그런 노고에 보답하지 못하고 시급 3000원짜리 수습 코끼리 조련사가 된 S의 갑갑한 상황,어디론가 연이어 탈출하는 코끼리의 얘기가 이어진다.

<외계인,달리다>의 가면가게 여주인은 다른 사람의 눈에 귀신가면이나 유령가면을 쓴 것처럼 비치는 자신을 발견한다. 가면 장사엔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진실을 몰라준다는 생각에 내심 불안해진다.

그런데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이 같은 환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환상적인 상황을 이용해 자신을 치유할 방법을 찾기도 한다. <외계인,달리다>의 주인 여자는 모든 사람이 해골,드라큘라,외계인 가면을 쓰고 있다는 현실을 파악하고 다시 뛰기 시작한다. <코끼리가 떴다>의 S와 어머니도 코끼리를 타고 바깥세상으로 떠난다.

누구나 '어느 순간 몸을 내려다보면 발가락에서부터 무릎,손,온몸에 생채기가 나고 피가 흐르는 듯한' 고통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편 <가슴 커지는 이야기>에서 작가는 사람들의 상처를 온몸으로 치유해주는 여자가 열어주는 '도시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그래서 아직 상처입지 않은 세계'를 보여준다. 그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는 환상밖에 없을까.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