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미발표 詩 '겨울의 사랑' 발굴

'늬가 준 요ㅅ보의 꽃잎사귀 우에서 잠을 자고/ 늬가 준 수건으로는 아침에 얼골을 씻고/ 늬가 준 얼룩진 혁대로 나의 허리를 동이고// 이만 하면 나는 너의 애정으로 목욕을 할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아얘 나의 밤의 품안에 너의 전신이 안키지 않어도/ 그리운 나의 얼골을 너의 부드러운 열손이/ 실징이 나도록 쓰다듬어 주지 않아도 …(중략) 너무나 능숙한 겨울의 사랑/ 여러분에는 미안할 정도로 교묘(巧妙)를 다한/ 따뜻한 사랑이었다/ 발악하는 사랑이었다. '(<겨울의 사랑> 중)

김수영 시인(1921~1968년)의 미발표 시 <겨울의 사랑>이 발견됐다. 그동안 <풀> 등 현실 참여적 작품을 써온 시인으로 알려져온 그가 남긴 연시(戀詩)라는 점이 특이하다.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민음사) 출간을 위해 담당 편집자가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원고를 살피던 중,원고 뭉치 사이에 끼어있던 거친 이면지에 적혀 있는 이 시를 발견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전집을 엮은 이영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연구원에 따르면 정확한 탈고일은 적혀 있지 않으나 1954년에서 1955년 사이에 쓰인 시로 추정된다.

사랑을 소재로 한 이 시는 실제로 김 시인의 연애사와 관계가 있다. 이 연구원은 "<겨울의 사랑>은 김 시인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됐을 당시 만났던 간호사와 나눈 사랑을 다룬 시"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물자가 귀하던 전후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 애인이 수건,침구 위에 까는 담요 등을 김 시인에게 선물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김 시인은 <겨울의 사랑>에서 '우리의 사랑이 죄악이라는 것은/ 시(詩)를 쓴다는 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고 꾸짓는 것이나 같은 일'이라고 정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겨울의 사랑>은 제목이 붙어 있고 김 시인이 탈고한 다음 원고 끝에 붙이는 돼지꼬리 모양 표시도 있어 완성작으로 볼 수 있지만,김 시인은 생전 이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쟁 중 서로 생사를 알지 못해 아내 김현경 여사와 헤어져 지내던 중 이 여인을 만났다가,<겨울의 사랑>을 쓴 후 김 여사와 재결합하게 되면서 끝내 발표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연구원은 또 전집 출간 과정에서 김 시인의 첫 발표시 <묘정의 노래>의 발표 연도가 기존에 알려진 1945년이 아닌 1946년이었음이 밝혀졌다며 일부 사실을 바로잡기도 했다.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에는 김수영 전집에 수록된 시 177편의 영인본과 함께 김 시인의 육필 원고,시상 메모와 초고,아내 김 여사가 정서한 원고 등 354편 육필 시 원고가 수록돼 있다. 철저하게 시를 쓰고 검토했던 시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