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서정희씨(32)는 매일 아침 화장대 앞에서 40분 이상 앉아 있는다. 스킨 · 로션부터 미백 에센스,아이크림,수분크림,자외선 차단제,파운데이션,파우더 등 차례대로 발라야 하는 화장품이 10가지가 넘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화장을 지우는 시간만도 30분이 걸린다. 화장대에는 총 30여가지 화장품으로 넘쳐나지만 모두 매일 쓴다는 게 서씨의 설명이다.

불황 속에서도 백화점들의 화장품 매출은 전년 대비 30~40%대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다. 가정의 달인 5월 선물시즌(6~22일)에 현대백화점의 화장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나 늘어 명품 매출 증가율(35%)을 앞질렀다. 이처럼 국내에서 유독 화장품이 초호황을 누리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국내 여성들이 지나치게 많은 종류의 화장품을 사용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랑콤의 조사 결과,한국 여성들은 매일 평균 12.6개의 화장품을 쓰고,화장 시간만 하루 40분 이상 걸린다. 유럽 여성들이 2~3단계(스킨-에센스나 로션-크림)로 기초화장을 끝내는 데 반해 한국 여성은 2~3배 많은 6~9단계를 바른다는 것.일본 여성도 5단계로 기초화장을 마친다. 또 차앤박화장품이 여성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매일 아침 사용하는 화장품 개수가 △20대 11개 △30대 13개 △40대 12개 △50대 10개에 달했다. 연령 불문하고 10가지 이상을 쓴다는 얘기다.

그동안 유통업계에선 불황에도 화장품이 잘 팔리는 이유로 '립스틱 효과'를 꼽았다. 하지만 립스틱 같은 색조 화장품에 비해 기초 화장품의 매출 신장률이 높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화장품 메이커들이 제품을 기능별로 지나치게 세분화해 가짓수를 늘리고,세트로 묶어 팔면서 사은품을 주는 등 마케팅 상술에 소비자가 현혹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여성 소비자는 "비비크림처럼 여러 기능을 한꺼번에 발휘하는 제품들도 나오지만 왠지 효능이 약할 것 같아 모두 따로 구입해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 저것 많은 제품을 한꺼번에 사용하다보면 역효과를 내므로 주의해야 한다. 차미경 차앤박피부과 원장은 "너무 많은 제품을 한꺼번에 바르는 것은 피부에 무리를 줄 수 있다"며 "자신의 피부 타입에 맞는 제품으로 3~4가지 정도만 바르는 게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모공 관리나 여드름 개선 제품은 피지 분비를 억제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데,유분기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노화방지 · 보습크림과 함께 쓰면 서로 기능을 방해하게 된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