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동경과 염원의 장이자 분쟁과 회한의 터이기도 한 아름다움.얼마나 숱한 용자와 영웅들이 아름다움으로 인해 환호하고 좌절하였으며,얼마나 많은 규수와 여인들이 아름다움으로 인해 도약하고 절망하였는가.

이 고혹적인 말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멀리 우회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겪은 경험들 중에서 아름다운 경험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눈을 감고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 보자.

낙서 가득한 전봇대에는 이미 여러 아이들이 잡혀 있다. 전봇대를 기준으로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엮여 있다.

반시간 여의 공방전 끝에 나를 제외한 우리 편 모두가 포로가 되어 굴비 두름 신세이다. 이제 나만이 희망이다. 적들의 추적을 따돌리고 적들의 포위를 뚫고 우리 편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내 몸이 도달해야 할 곳은 전봇대요,내 손이 닿아야 할 곳은 전봇대와 첫 번째 포로의 접점이다. 술래 중 한 명이 달려든다. 이쯤이야.또 한 명이 달려든다. 물러서는 척하다가 따돌린다. 앞에 술래 두 명이 보인다. 주저할 시간이 없다. 날렵한 페인트 모션을 구사하며 과감히 두 명 사이를 관통한다. 전봇대로 달려들어 내 손이 포로의 손등을 후려친다. 해방이다. 포로였던 내 편의 아이들이 술래들의 탄식을 멀리하고 점점이 흩어진다. 노을이 내 몸을 적시고 바람이 내 볼을 어루만진다. 나는 지금도 '다방구'라는 놀이를 하던 시절의 날쌘 나를 돌아보며 미소 짓는다. 아름다운 시절의 나였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지 않을까. 일상의 한 곳에 곱디곱게 혹은 꾸깃꾸깃 접어 둔 아름다운 순간.눈 쳐다보며 방긋하고 귀 기울이며 생긋하는 아름다운 순간.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인 존 듀이(1859년~1952년)는 아름다움을 우리의 일상적 경험 속에서 찾았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여러 경험들을 한다. 놀이,청소,공부,요리,설거지,회의,운전 등등.아침에 눈 뜨고서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우리는 많은 경험들을 한다. 그런데 때론 이런 경험들이 우리를 힘들고 짜증스럽게 하기도 한다. 농구를 하는데 번번이 공이 링을 맞고 튀어 나올 때,낙엽이 하염없이 떨어지는 연병장을 청소할 때,아무리 끙끙대도 단서조차 찾을 수 없는 수학 문제와 씨름할 때,국물은 끓는데 간장이 보이지 않을 때,기름 범벅 된 그릇들이 부엌에 산더미를 이룰 때,우리의 경험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런데 짜증나고 힘들다고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우리는 아름다움을 경험할 기회를 영영 잃는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아 나가야 한다. 다시 한 번 공식을 이해하여 수학 문제에 도전해야 한다. 어느덧 깨끗해진 그릇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물기를 닦고 선반 위에 올려 놓는다. 뽀드득 빛나는 그릇들,깔끔해진 부엌,아내의 칭찬과 미소,이들의 조합이 아름다운 경험을 성취해 낸다.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는 수학 문제.연필심을 꼭꼭 누르며 공책에 풀이를 펼쳐 나간다. 지우고 고치기를 수십 번.이제 수와 식이 가지런히 이어진다. 마침내 계산이 완료된다. 조심스럽게 답안지를 들춰 본다. 정답이다. 새벽의 여명이 밝아 오며 새 소리가 들려 온다. 아름다운 순간이다.

존 듀이는 미술관이나 음악당에 존재하는 아름다움보다 일상에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더 소중히 생각하였다. 우리의 일상은 황폐화되어 있는데 그림과 음악이 아름다움의 향연을 펼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일상적 경험 속에서 고통과 역경을 딛고 이겨 나가며 완성을 성취해 내기,존 듀이에게서 아름다움은 그 곳에 있다. 케이블 카나 곤돌라를 타고 가는 등산보다는 땀 흘리고 헉헉대며 가는 등산이 훨씬 더 큰 아름다운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은 간단치 않은 것.완성의 성취가 지속될 수는 없다. 우리는 다시 일상을 열어야 한다. 더러워진 그릇을 다시 닦아야 하고,새로운 공부를 통해 자신을 성숙시켜야 하고,또 다른 아침 회의를 위해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고달프고 힘들다. 그렇지만 다시 완성의 성취가 있을 것이다. 아니 그를 희망해야 한다. 도전과 좌절과 완성의 수레바퀴,그것이 우리네 일상이며 그러한 일상 속에 아름다움이 깃든다. 고통만 지속되는 세상에는 아름다움이 없지만,행복만 지속되는 세상에도 아름다움은 없다. 지옥과 니르바나에는 아름다움이 없다. 아름다움은 고통과 행복이 교차하는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성취될 수 있다. 행복만 지속되는 삶이라면 아름답기보다는 지루하고 단조로울 것이다. 존 듀이는 말한다.

"삶의 과정에서,평정한 순간의 성취는 동시에 환경에 대한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완성의 시간은 또한 새로운 시작의 시간이다. 완성과 조화의 즐거움을 영속화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세계로부터의 후퇴이다. 그러한 시도는 생기의 약화와 손실이다. " 힘을 내자.일상을 질주하는 아름다움의 롤러 코스터를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