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숫자의 인디언이 백인의 마차 주변을 빙빙 돌며 공격하는 미국 서부시대의 한 장면 같았다. '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그의 유작 《콜디스트 윈터(원제 The Coldest Winter)》에서 압록강까지 북진했던 한국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꼼짝 못하게 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군의 베트남 주둔 문제를 다룬 보도로 1964년 퓰리처상을 받은 그는 1963년 한국전에 참전했던 군인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듣고 이 '잊힌 전쟁'을 책으로 엮어내기로 했다. 그는 보병 수백 명을 인터뷰한 끝에 2007년 봄 책을 완성했다. 그러나 퇴고 후 닷새 만에 그는 또 다른 취재를 위해 캘리포니아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군 제1기병사단의 평양 입성과 5일 후 벌어진 중공군과의 첫 교전,그리고 연이은 패배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전투 상황과 당시 주변국들의 정세,주요 인물,참전 병사들의 내면세계까지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가 1084쪽에 달하는 이 책을 통해 밝혀낸 진실은 '한국전쟁이야말로 오판의 연속으로 이어진 역사적 비극'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전쟁은 어떤 식이든 일종의 계산 착오에서 시작되는 법이지만 한국전쟁은 양측 군대가 내린 모든 결정이 하나같이 잘못된 계산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에서 독특했다"고 지적했다.

1950년 1월12일 워싱턴에서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일명 '애치슨 선언'을 발표하자 소련은 이를 한반도에서 어떤 무력 도발이 있더라도 미국은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했다.

김일성도 계산 착오자였다. 그는 미국이 남한을 방어하기 위해 군대를 보낼 리 없다고 판단했다. 또 혁명가로서 자신의 인기만으로도 인민군이 남한에 입성하면 남한 농민들이 봉기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저자는 "결국 그는 자신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그에 반해 이승만은 얼마나 형편없는지,남조선 인민들이 얼마나 그의 침공을 손꼽아 기다리는지를 터무니없이 부풀리며 남침을 부채질한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셈"이라고 꼬집었다.

미국도 오판했다. 그들은 전쟁 초반 미 육군의 전투력을 과대평가했다. 인민군이 38선을 넘어왔을 때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주요 군 사령부 요원들과 정부 고위 관료들,미군 대부분은 현재 육군의 상태가 아무리 형편없어도 그들을 막아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다.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치면서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간 것도 판단 착오였다. 마오쩌둥 역시 중공군의 혁명정신이 미군의 우수한 무기를 능가할 수 있다고 자신한 나머지 남쪽 끝까지 밀고 내려왔다가 큰코를 다쳤다.


이처럼 거듭된 오판의 배경을 살피기 위해 저자는 주요 인물들의 성격 분석에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맥아더를 '마마보이'로 평가하는 점이 눈에 띈다. 저자에 따르면 수십 년을 장군으로 지내온 맥아더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한 인물이었다. 맥아더 본부에서는 맥아더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상대방은 듣기만 하는 것이 비공식적인 규칙이었을 정도로 그는 '듣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고 자기 과신에 찬 인물이었다.

이런 그의 뒤에는 독불장군인 아버지 아서 맥아더와 어머니 펑키 맥아더가 있었다. 아서 맥아더는 남북전쟁 영웅이었으나 불행하게도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였으며 항상 자신이 옳아야만 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펑키 여사는 아들의 경력관리에 몰두했다. 심지어 아들이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던 4년 동안 근처 호텔에서 머물면서 아들을 지켜볼 정도였다. 저자는 이를 두고 맥아더가 "역사상 그 어떤 인물보다도 심각한 마마보이였다"고 평가한다.

이 같은 맥아더의 성격은 한국전 판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중국을 지나치게 얕잡아 봤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중국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중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머릿속에 있는 중국은 마오쩌둥 이전의 19세기 모습이었다. 그는 중공군의 본격적인 공격을 앞둔 시점에서도 중공군 총지휘관이 펑더화이가 아니라 린뱌오라고 착각했다.

맥아더의 오판에는 참모들의 탓도 작용했다. 참모들은 맥아더가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저질렀고 그의 예상에 어긋나는 요소들은 줄이느라 바빴다. 정보 참모였던 찰스 윌로비는 의도적으로 미리 손을 본 정보들만 맥아더에게 전달했다. 중공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져도 그는 중공군이 아니라고 부정하거나 소규모 지원군일 뿐이라고 무시했으며 그 결과는 처절한 패배로 이어졌다.

혹독했던 한국전쟁의 진실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정치인과 군 지휘관들의 사고 체계,병사들의 개인적인 체험과 역사적 의미까지 촘촘하게 짚어낸 저널리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