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가까이 된 마광수 교수는 자신의 말대로 온몸이 만신창이다. 아직도 종합병원 신세다.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구속되면서부터다. 다음 해 그는 연세대 교수직에서 직위 해제까지 당했다. 그 후 수년이 지나 다행히 복직됐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심약하고,자기애(自己愛)적 성향이 농후하고,무서운 독서광에 기발한 착상을 잘하고,나름대로 주관과 논리가 있는 사람이다. 물론 이는 곁에서 지켜본 내 생각이다. 반면에 사회성은 뭔가 부족해 보인다. 지금 앓고 있는 후유증은 '즐거운 사라 사건' 자체로 인한 영향도 크지만,그의 올곧은 성품 탓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마 교수는 그 사건 자체보다는 학창시절부터 우정과 의리를 지켜주었던 몇몇 동료 교수들의 배신에 따른 정신적 충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면복권 뒤에도 주위에서 복직 반대,수업 배정 반대를 외쳐대니 울화병까지 생겼음직하다. 반대편의 목소리는 대학 교수로서 외설작품을 쓰고,도덕적으로 흠결이 많다는 것이다.

마 교수의 경우를 보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왕'이 떠오른다. 리어왕은 가까운 사람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그 뒤 음모에 따른 처절한 배신감을 겪다 반치매 상태에 빠져 죽는다. 물론 마 교수와 리어왕의 스토리는 다르다. 다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점과 그에 따른 정신적 · 신체적 후유증이 비슷하다는 말이다.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둘 다 화병이 동반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다. 노년기에 접어들어 이렇게 큰 스트레스를 겪게 되면 심각한 우울증은 물론 각종 신체적 질병이 생긴다. 심장병,당뇨병,고혈압,치주염,위장염,만성두통 등의 병발은 예사다. 노쇠화도 급격히 진행된다. 중증 우울은 치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든을 넘긴 리어왕은 "제발 나를 조롱하지 마오,나는 어리석은 늙은이라오.무엇보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옷을 기억할 수가 없고…"라며 피해의식과 인지능력 저하를 호소한다. 복수의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고,자식이 앞서 죽는 것을 보고 상태가 더욱 악화돼 결국 사망한다. 리어왕은 격한 성격과 자신에게 알랑거리는 사람을 잘 믿고,귀가 얇은 것이 문제였다.

요즘 마 교수의 심신은 80세 가까운 노인과 진배없다. 주위의 지지나 동정을 얻기도 힘든 상황이다. 용서하는 마음이 생기길 바라지만,나이 들어 병들고 굳어진 성격에 변화가 오기란 쉽지 않다. 굳이 위안을 찾는다면,몸과 마음이 멍들긴 했지만 늙은 리어왕보다는 형편이 훨씬 나을 성싶다.

마 교수가 인과(因果)의 무거운 짐을 털고 예전 같은 열정과 건강이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마 교수,노화의 역전은 아직도 가능하다오. 마음 고생 많았던 노모(老母)가 돌아가시기 전에 건강한 모습을 되찾는 것도 효(孝)가 아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