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남단의 해남 대흥사에는 유교 형식의 사당이 하나 있다. 임진왜란 때 전국 각지에서 5000명의 승병을 일으켜 평양성 탈환 등의 혁혁한 공을 세운 승병장 서산대사 휴정(1520~1604년),사명대사 유정(1544~1610년) 등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정조의 어명으로 지은 표충사(表忠祠)다. 당시 정조는 어명을 내려 대흥사와 묘향산 보현사에 사당을 짓고 각각 표충사와 수충사라는 편액을 하사했다.

사찰 경내에 유교식 사당이 있는 것은 희귀한 일로,숭유억불(崇儒抑佛)의 조선시대였지만 서산대사와 승병들의 나라를 위한 충정을 그만큼 높이 샀던 증거다. 실제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영에 배치된 의승(義僧)수군 800명의 공을 높이 평가하면서 이들을 포상하도록 선조에게 장계를 올렸다. 또 정조 때 표충사를 짓기 이전부터 왕이 축문(祝文)과 제문(祭文)을 내려 제사를 모셨던 기록들이 대흥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대흥사가 이처럼 조선 후기까지 국가적 행사로 치러지다 일제강점기 이후 대흥사의 사찰 행사로 규모와 위상이 축소된 서산대제의 승격 및 원상 회복을 추진키로 했다. 대흥사 주지 범각 스님은 14일 "서산대사의 호국정신을 기려 국가 주도로 거행됐던 제향행사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졌고 지금까지도 복원되지 않고 있다"며 "국가적 행사로 복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대흥사는 제489주년 서산대제를 봉행하는 오는 22일 서산대제의 원상 회복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 서산대사를 비롯한 승병장은 물론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무명 의승들의 우국충정을 기리고 계승하려면 국가적 차원에서 제향을 봉행해야 한다는 뜻에서다. 이날 공청회에는 황인규 동국대 교수와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가 각각 '서산의 승군활동과 조선후기 추념사업''서산대제의 국가적 제향 전승문제'를 주제로 발표한다.

대흥사는 초의선사를 기리기 위해 서산대제에 이어 오는 23~24일 경내 특별무대에서 제2회 대한민국 차인대회와 제18회 초의문화제를 연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