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대방의 소설을 파괴하고 무너뜨렸습니다. 바람이 통하는,통풍이 잘 되는 소설을 만들기 위해서였지요. "(에쿠니 가오리)

"두 사람이 소설을 함께 쓴다는 건,한쪽 손을 끈으로 묶고 하는 야구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던진 직구를 상대방은 변화구로 돌려주며 흥미진진한 캐치볼을 만들어 간다는 게 공동집필의 묘미지요. "(쓰지 히토나리)

보통 소설 쓰기는 작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45)와 쓰지 히토나리(50)는 소설 집필에서 '팀플레이'를 시도했다. 이들의 전작 《냉정과 열정 사이》는 에쿠니가 여자 주인공 아오이의 이야기를,쓰지가 남자 주인공 쥰세이의 이야기를 각각 써서 하나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완성한 것.우연히 한 행사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이들은 한 월간지에 에쿠니가 아오이의 입장에서 한 회 쓰면 이를 받아 쓰지가 쥰세이의 입장에서 한 회 쓰는 형식으로 2년 동안 작품을 연재해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성공 이후 10년이 흐른 올해 이들은 다시 뭉쳐 《좌안-마리 이야기》와 《우안-큐 이야기》(소담출판사)를 발표하며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췄다. 신작 출간 및 서울국제도서전에 맞춰 방한한 이들은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팀플레이로 소설 쓰기의 고충과 기쁨'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독자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소설가들이다. 에쿠니는 《반짝반짝 빛나는》 《도쿄 타워》 등의 소설로 연애와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다고 평가받는 인기 작가다. 쓰지는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영화감독이자 배우,가수로도 활약하는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늙은 프로레슬러와 소년의 교감을 다룬 영화 '아카시아'를 준비하고 있으며,현재는 배우자인 영화배우 나카야마 미호와 함께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공동집필이 어려운 점도 있지만 시너지 효과도 낸다고 말했다. 에쿠니는 "사적으로는 연락을 거의 취하지 않지만 문학에 있어서 우리는 든든한 파트너"라고 표현했다. 쓰지는 "공동집필하면 내 마음대로 소설을 조종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지만,상대방 글에서 영감을 받아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문학이라는 세계에서도 팀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실험을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출간된 이들의 공동작품은 옆집에 살며 유년기를 공유한 마리와 큐가 50년 동안 겪는 인생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쓰지는 "전작 《냉정과 열정 사이》가 러브 스토리였다면 이번에는 라이프 스토리를 함께 써보고 싶었다"면서 "인생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관계와 교류를 그리며 많은 인생을 보여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에쿠니는 "제목은 강을 사이에 두고 함께 걸어간다는 의미로,늘 붙어있지는 않지만 옆을 돌아보면 시대를 공유하는 그 사람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소설도 에쿠니가 여성인 마리 이야기를,쓰지가 남성인 큐 이야기를 맡았다.

이번이 첫 방한인 에쿠니는 "내 소설의 주제를 하나 꼽으라면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필요하다'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