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획사들 경영난에 계약금 안받고 비용 부담도

사례1. CF에서 주가를 날리고 있는 톱스타 A는 최근 소속사와 재계약을 하면서 계약금을 받지 않았다.

회사가 경영난에 빠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A는 소속사와의 신뢰 속에서 다른 회사로 옮기지 않고 잔류를 결정했다.

대신 대외적으로는 계약금을 받지 않은 사실을 비밀로 했다.

회사와 자신 모두의 체면을 위해서다.

사례2. 인기 배우 B는 최근 자신의 매니저에게 용돈이라며 돈을 보냈다.

B는 "요즘 우리 회사 사정을 뻔히 아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매니저가 밥값이라도 있나 걱정이 들었다"면서 "매니저가 겸연쩍어하면서도 받더라.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라고 전했다.

경제난으로 화려하게만 보이는 연예계에도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가운데 스타들도 자의든 타의든 고통분담에 나섰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웬만큼 이름 있는 연예인이라면 수천만~수억 원 대의 계약금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계약금이 사라지고 있다.

회사 사정으로 약속했던 계약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속으로 끙끙 앓을 뿐 스타들로서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모두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촬영장이나 행사장을 오가며 드는 실비를 연예 기획사가 아니라 연예인이 직접 부담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 심지어 연예인이 매니저의 활동비를 지원하기도 하니, 불황이 낳은 연예계 신풍속도다.

◇계약금 포기하고 비용도 부담하고
대형 기획사의 고위관계자는 "연예계가 전반적으로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어 과거처럼 돈과 계약서만으로는 연예인과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뜻과 마음이 맞아서 회사와 연예인이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가족처럼 하나가 될 수 있는 관계가 돼야 지금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며 "다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 수익을 몇 대 몇으로 나누고 경비는 무조건 회사가 부담하는 등의 원칙론만 들고 나오면 이제는 같이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에는 회사가 어려워도 연예인들이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다행히 최근에는 많은 연예인들이 고통 분담에 동참하고 있다"며 "지금의 위기가 오히려 연예인과 회사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연예 기획사들이 인력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을 지켜본 스타들은 회사의 고통 분담 요청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불만이 있다해도 연예계가 전반적으로 어렵다 보니 회사를 옮기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조연급 배우 C는 "지난해까지 전담 개인 매니저가 있어 개인적인 일을 볼 때도 회사에서 차량 지원이 됐지만 올해부터는 전담 매니저가 없어졌다"며 "회사 사정이 어렵다보니 여러 배우가 스케줄이 있을 때만 매니저의 지원을 받게 됐는데 불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자칫 둥지 찾기 어려워질 수도
기획사와 연예인 간에 전속 계약이 아닌 에이전시 계약이 늘어가는 것도 불황의 한 단면이다.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이라고 해도 광고를 많이 찍지 않는 한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는 적자가 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매니저들이 에이전시 계약을 선호하고 있는 것.
에이전시 계약의 경우 기획사는 연예인에게 전속 계약금을 주지 않고, 로드 매니저나 코디네이터, 홍보 등의 비용 역시 연예인이 낸다.

대신 광고, 드라마, 영화 등의 일감을 따와 연예인과 연결해주면 연예인이 거기서 생긴 수익의 일부분을 에이전트 비용으로 낸다.

실제로 최근 탤런트 D는 여러 곳의 기획사를 노크하며 전속 계약을 타진했다가 결국 에이전시 계약을 맺었다.

자신이 원하는 계약금과 대우를 해주겠다는 회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D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광고 모델로는 인기가 없어 기획사들이 선뜻 전속 계약을 맺지 못했다.

또 대형 스타의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 계약금이나 대우를 받지 못할 경우, 아예 따로 독립해 회사를 차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류스타 최지우가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한 매니저는 "과거에는 얼굴이 알려진 배우를 많이 보유하고 있을수록 위상이 올라간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철저하게 돈이 되는 연예인인가를 따지게된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 연예인 중에서도 경비를 제하고 나면 회사에 적자를 안기는 경우가 많다"며 "불황 속 돈 안 되는 연예인은 미련없이 정리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