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분명히 싫어// 이리저리 꼬셔서 돌 던지게 하고/ 그것참 잘 됐다/ 패고 조지고 마구 마구 잡아 가두고/ 그렇게 시끄럽게 일부러 난장 만들어// 제 몫 챙기러 드는/ 왼쪽 오른쪽/ 서로 맞물고 돌아가고 돌아가는// 그런 판에/ 끝내는/ 저희가 이겼다고 만세 부르는// 두 놈들/ 똑같이/ 정말로 나는 싫어.'(김지하 <못난 시 9> 중)

시인 김지하씨(68)는 지난해를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시집 《못난 시들》(이룸)과 산문집 《방콕의 네트워크》(이룸) 등을 출간한 김씨는 6일 인사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촛불을 '숯불'이나 '횃불'로 지피고 이용하려 했던 세력들이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한창이었을 때 집회 한복판으로 들어가지 않고 덕수궁 옆에 서 있던 어린 여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왜 안 들어가니'라고 물었더니 '저건 촛불이 아니라 숯불'이라고 대답하더군요. 숯불이 뭡니까. 자기 고기 구워먹자고 숯을 피우는 게 숯불입니다. 카쇠르(시민들의 평화 시위 때마다 복면을 쓰고 나타나 폭력 선동을 일삼아 난장판으로 귀결시키는 파괴자들을 뜻하는 프랑스어)들이 평화로운 집회에 괜히 끼어들어 폭력시위로 만들었고,그런 '꾼'들이 들어와서 진압이 시작된 거지요. 촛불집회 초기에 '애들이 뭘 알겠어요','여편네들이 뭘 알아요'라고 비웃었던 사람들이 지난해 6월10일을 전후해 촛불을 이용하려고 들어갔지요. "

김씨는 초기 촛불집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촛불은 손자 감기 낫게 해달라고 정한수 떠놓고 비는 할머니의 다소곳한 마음이고 하얀 영혼입니다. 촛불에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조직도 지도자도 책임자도 명령자도 없이 질서를 유지하고 의사를 전달했던 촛불집회는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반정부라면 20대부터 이골이 난 제가,촛불집회가 반정부 집회에 불과했다면 감동했을 리가 없지요. "

김씨는 또 "어린 학생들,'유모차 부대'로 불렸던 아주머니들,나같은 쓸쓸한 노인들이 역사의 주체로 시청 앞에 모인 건 보통 사건이 아니다"면서 "후천개벽론에서 말하는 기위친정(己位親政:개벽이 시작되면 소외계층이 임금처럼 우주정치를 담당하는 큰 전환이 일어난다는 뜻)에 입각해 보면 촛불은 우주적 사건"이라고도 평했다. 김씨는 현 정권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괴질과 대질병 시대에 강의 수질 관리는 정말 중요합니다. 이미 수질 때문에 대운하는 안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는데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

신작 시집 《못난 시들》에 대해서 그는 "촛불세대이자 인터넷세대인 내 아들들에게 '아버지 시가 어려우니 조금 못나고 쉽고 쿨하고 재미있게 쓸 수 없느냐'라는 말을 듣고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90여편의 제목은 모두 '못난 시'이고 뒤에 붙은 번호만 다르다. <못난 시 7> 다음에 <못난 시 10000>이 나오는 식이다. 김씨는 "시에 제목을 붙이면 못난 시라도 근사하게 보이게 마련"이라면서 "내 시의 번호도 순서 없이 제멋대로 붙여 완전한 무질서를 추구해 봤다"고 전했다. '못난 시'로 통칭한 후 두서없는 번호를 단 아흔한 편의 수록작에는 시인의 사는 이야기,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