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부터 '헤라클레스 기둥'으로 불린 지브롤터 해협이 있었기에 지중해는 대서양의 거센 풍랑을 비켜갈 수 있었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중해는 지구 상의 6대륙 가운데 3대륙을 이어주고 있으며,보기 드물게 연중 내내 쾌적한 기후조건을 지녔다. 고대의 찬란한 문명 3개를 살찌우고 세계 3대 종교를 탄생시키거나 꽃피우는 무대가 된 것은 당연했다.

영국의 역사가 존 줄리어스 노리치(80)가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전2권)에서 설명하는 지중해의 문명사적 의의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의 첫 문장을 '지중해는 기적이다'로 시작한다.

이 책은 고대 이집트에서 1차 세계대전까지 5000년간 지중해를 무대로 펼쳐진 파란만장한 역사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지중해 역사의 출발점을 이집트 문명으로 삼은 것은 이후의 크레타,미케네,트로이 전쟁을 통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 이어지는 문명사를 풀어가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전작 《베네치아의 역사》와 《비잔티움》 3부작으로 유명한 저자는 유려한 글솜씨와 독창적인 해석으로 이집트인과 페니키아인,그리스 · 로마인,아랍인,에스파냐인,해적 등이 펼친 전쟁과 외교 · 무역,찬란한 예술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낸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지중해는 세계의 중심이었다. 트로이 전쟁과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나고,기독교가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며 로마 제국 멸망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유럽의 태동을 준비하고,르네상스가 꽃핀 장이었던 '땅 가운데의 바다'다. 로마제국이 '우리의 바다'로 불렀던 세상의 중심이 곧 지중해였다.

알파벳도 그 곳에서 태어났다. 모든 구어를 20여개의 부호로 표현할 수 있는 법칙을 개발한 것은 엄청난 발전이었다. 그 첫 단추는 지중해 동부에 본거지를 둔 셈어족이 꿰었다. 비블로스에서는 기원전 11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알파벳 비문이 발견됐다. 그러나 자음으로 구성된 초기 알파벳은 그보다 몇세기 전부터 이미 쓰이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알파벳의 발명 시기를 기원전 1700년에서 1500년 사이로 본다.

그는 이 책에서 에스파냐의 두 군주인 페르난도와 이사벨을 비중있게 다룬다. 이들은 그라나다 왕국을 멸망시켰고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을 대거 추방해 서유럽의 인구 판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훗날 지중해를 역사의 주역에서 조역으로 밀려나도록 콜럼버스의 항해에 자금을 대준 돈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뛰어난 웅변가였던 로마의 카이사르를 '유능하고 매혹적이었으나 신뢰감이 없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0년 성 이레네 성당에서 미사를 보며 새 수도를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이후 1123년간 지속한 비잔티움 제국도 수도만 옮겨갔을 뿐 본질적으로는 로마 제국과 달라진 게 없었다고 서술한다.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 도시들로 번성했던 리비아 동부의 키레나이카,로마의 속주를 거쳐 19세기 프랑스에 점령됐던 알제리,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고 19세기까지 토착민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문명까지 아우른다.

2700년 전에 활동한 시인들의 얘기도 등장한다. 그가 《신통기》와 함께 《노동의 나날》을 쓴 헤시오도스의 문장을 분석하면서 "헤시오도스에게 부족한 것은 호메로스의 역동성,활력,분방한 상상력이다. 호메로스가 찬란한 금빛 태양이라면 헤시오도스는 창백한 은빛 달이라고나 할까?"라고 표현한 부분이 압권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